[매니지먼트] 겉으론 평온, 그러나 긴장감 가득한 전쟁터 같은 곳
상태바
[매니지먼트] 겉으론 평온, 그러나 긴장감 가득한 전쟁터 같은 곳
  • 장성환(28공작소 디지털랩 소장)
  • 승인 2017.11.06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8Story 1 - 내가 바라본 진료실의 모습

‘치과’는 치과의사를 중심으로 치과위생사와 치과기공사의 역할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특히, 치과기공사의 역할은 치과진료의 최종 정점인 보철물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이에 본지는 6회에 걸쳐 장성환 소장의 소박하고 진솔한 ‘기공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성환 소장은 ‘28공작기공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엔 기공관련 서적 ‘MY 28 STORY’를 출간했다.

글 | 장성환(28공작기공소 소장)

나는 ‘치과기공사’다. 치과기공사는 대한민국의 법률에 따라 치과의사의 의뢰에 의해 보철물을 제작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치과의사와의 협력 또는 협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기술을 아무에게나 내어줄 수 없으며, 반드시 치과의사를 통해 나의 가치가 실현된다. 이 글을 통해 나의 기술을 인정해주신 치과의사 원장님께 감사를 전하며 또한,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을 다하는 치과 기공 테크니션들에게 마음 깊은 응원을 전한다.

기공의뢰서는 왜 이렇게 간단할까
보철물 제작에 있어서의 기준은 당연히 Impression에서 채득된 Model이다. 구강의 형상을 그대로 복제한 모델을 기준으로 나는(치과 기공사들은) 작업을 한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할지도 모른다. 복제된 Impression에서 Stone 작업 후 얻은 Model을 가지고, Mounting 후 Gold Crown이든, Pocelain 또는 Zirconia든, 그 Model에 맞게 보철물을 제작해 주면 된다.
어린 시절 조립식 장난감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서를 보지 않고도 그 장난감을 조립하게 된다. ‘레고’처럼 다양한 형태의 창작이 아닌 이상, 조립식 장난감은 누가 만들어도 완성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과물은 똑같다. 조립식 장난감의 설명서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첨부되어 있다.

그런데, 치과 기공물 의뢰서에는 보철물 종류, Shade, 때론 Contact 세기나, Bite의 강약 정도만 기록돼 있다. 그동안의 경험치가 쌓이면서 이해의 폭이 커지긴 했지만, 초보 치과기공사들은 이해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사실,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디자이너의 의뢰는 옷의 형태나 사이즈는 물론 소재나 액세서리, 기타 요구사항들이 세밀하게 표시된다.
그런데 왜? 치과로부터 전달되는 의뢰서는 왜 이렇게 간단할까. 이런 의뢰서 상의 단순 기록만으로도 과연 제작이 가능한 걸까?

내리 전수돼 온 기공사들의 생존법
결론적으로, 답은 ‘가능하다’이다. 가능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치과분야가 발달하는 동안 치과 기공 분야도 같이 발달했으며, 이를 통해 얻은 시행착오의 결과들을 아낌없이 전수해준 선배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재료의 발전과 더불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으로 결과물을 완성시킨 많은 테크니션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치과의사와 치과기공사의 상생, 즉 협력을 통해 환자를 위한 보철물 제작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간단한 의뢰서만으로도 제작이 가능하지만, 의뢰서를 이해하고 문제없이 기공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많은 노력들은 고스란히 치과기공사들의 몫이다. 긍정 마인드의 소유자라면 그만큼 기공사들의 역량이 많이 커졌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치과는 어떤 환경, 어떤 상황이기에 의뢰서 한 장 자세히 기록할 만큼의 여건도 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보는 단순한 기공 의뢰서 이상으로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단 말인가.

평온하지만 긴장감 가득한 진료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진료실 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 때문에 진료실에서 대기하든, 환자의 보철 결과물을 보기위해 진료실에서 대기하든 종종 업무적으로 치과를 찾는 경우가 있다. 내가 환자 입장에 서서 ‘왜 이 치과를 찾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사실, 어느 지역, 어느 지하철역을 가든 많은 치과들이 있다.
그 많은 치과 중에 어느 환자는 지금의 이 치과를 찾았다. 상담만 하고 다른 치과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치료를 위해 대기실에 대기하기도 하고 때론 X-ray 촬영을 하기도 한다. 환자는 당연히 치료를 목적으로 치과를 방문했고, 이곳에 대기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 비교하고 고려해서 최종 결정을 내린 뒤, 내가 방문한 치과에 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환자의 결정은 치과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다. 실장님의 응대가 실망스럽거나 불친절하다면, 아마도 그 환자는 다른 곳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또한, 보철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더 이상 오지 않거나, 주변에 소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보철물이 필요한 환자라면 나의 역할도 크게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여겨진다.(나의 역할은 다음호에서 좀 더 세심하게 다루기로 하겠다)

진료실 모습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행여 나의 잘못으로 보철물이 잘못 됐다면 치과나 의료진에게 큰 민폐가 되기 때문에 대기 중인 환자 한명 한명이 내겐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상호 소통을 위한 바람직한 방법은
블로그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Remake가 발생했던 모양이다. 담당 선생님이나 치과위생사 선생님이 그 결과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Impression을 채득한다는 불만 가득한 환자의 글이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치료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는 동시에 추가 시간도 부담한다. 그렇게 되면 환자는 심기가 불편해지는 게 당연할 것이다.
다음은 Shade를 보기위해 치과를 방문했을 때 얘기다. Shade를 보고 나오려는데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는 담당 치과위생사 선생님에게 “임시 보철물은 안 예쁘던데, 예쁘게 해주세요”라고 했고, 담당 선생님은 “임시 보철물이니까 안 예쁜데, 완성된 보철물은 예쁘게 만들어 드릴께요”라는 내용의 대화였다. 너무도 당연한 대화일 수 있지만 그러나, 환자의 요구사항이나 기대치가 주관적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정답과 환자의 정답이 일치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환자의 Temporary 모형을 채득하고, 원하는 형태를 자세히 기록해야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과정을 통해 무사히 해당 보철물을 제작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 곳에 가지 않았다면, 만약 둘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동안의 관행대로 기계적인 보철물이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치과 기공사는 진료실에서 보내준 Model을 기준으로 보철물을 제작하고, 또한 의뢰서를 토대로 제작하지만, 원장님의 함축된 의도를 이해하거나 환자의 바람이 첨부되어야 좋은 결과의 보철물을 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공사 입장에서 환자와 원장님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이상 종이 문서 한 장만으로 기대치와 바람을 모두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사실 관계 이상으로 감정과 표정, 환자의 기대치까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대부분이다.
과연,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기공소에서 만든 보철물이 매번 잘 맞고 환자가 만족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잘못된 보철물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기공사에게 돌아가지만, 그에 대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환자와 대면 중인 진료실의 몫이 돼버린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진료실의 현실과 환경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과는 대리석으로 장식한 호텔 로비 같이 편안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치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목격한 바로는 긴장감 가득한 전쟁터 같은 모습이었다.
과연, 환자와 원장님과 기공사, 삼자 모두 만족스런 더 좋은 소통 방법은 없는 걸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