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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삼평’과 21세기 대한민국의 ‘장성환’28Story4-임진왜란과 도공전쟁
장성환(28공작소 디지털랩 소장)  |  denfoline@denfo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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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5  11: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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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는 치과의사를 중심으로 치과위생사와 치과기공사의 역할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특히, 치과기공사의 역할은 치과진료의 최종 정점인 보철물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이에 본지는 6회에 걸쳐 장성환 소장의 소박하고 진솔한 ‘기공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성환 소장은 ‘28공작소 디지털랩’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엔 기공관련 서적 ‘MY 28 STORY’를 출간했다.

글 | 장성환 (28공작소 디지털랩 소장)
   
 

어느덧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인생의 쓴맛이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느낄 때면, 그래서, 부모님이 나의 고등학교시절에 그렇게도 “공부해라”라고 하셨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 고등학교 그 시절은 공부, 그 자체가 싫었는데,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세월이 지날수록 느끼게 되는 거 같다.

이런 상상을 해 본적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치과대학에 입학해 보는 상상을… 그리고, 치과 의사가 되는 상상을… 그것을 상상하는 동안은 매우 즐거웠지만, 이내 현실을 인정했다. 엘리트 중에 엘리트만 갈 수 있는 그 곳을,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고, 되고 싶다고 다 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30대의 인생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값진 경험을 하고 난 후, 세상을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긍정의 마인드를 갖게 되었고, 즐거움을 찾는 여유를 갖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의미와 가치를 내 직업인 ‘기공’에 담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삶속에서 즐거움과 여유를 찾게 될 무렵, 엄두가 나질 않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아버지와의 일본 온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효도’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개인적으로 해외여행과 비행기를 태워드렸다는 점에 의미를 두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여행은 또, 우연히 조선의 역사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규슈 지역을 다녀왔는데, 가이드를 통해 조선인 ‘이삼평’의 얘기를 잠시 듣게 되었다.
사가현의 다케오 신사-3,000년 된 녹나무가 유명한곳이며, 이 나무를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토토로’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영감을 얻었다는 곳-을 향하던 중에, 일정에는 없는 곳이지만, ‘아리타 도자기마을’을 소개하면서, 임진왜란과 도공의 전쟁에 대해 들려주었다.
전쟁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백자와 백자 기술이 탐나 일으켰다고 했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사기장’ 이삼평은 처음에는 자기의 제작을 거부하였으나, 극진한 대우에 결국, 백자 제작에 쓰일 흙을 찾아 다녔으며, 아리타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일본 최초의 백자를 제작했다고 했다. 아리타 도자기의 ‘시조’이며, 그를 기리는 ‘신사’도 있다고 했다.

여기서 극진한 대우란 ‘사무라이’급에 해당하는 대우라고 했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졌어도 천대받은 직업이었다고 했다. 문득, ‘사기장’ 이삼평과 ‘치기공사’ 장성환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만일, 조선시대에 ‘사기장’의 대우가 좋았었다면, 일본에 끌려갔던 ‘이삼평’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조선시대의 기술공들을 무시하는 전통(?)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여전히 남아있는가? 나의 직업인 ‘치과 기공사’로서 합당한 대우는 무엇이며, 그 대우를 받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버지와의 여행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서, 이삼평과 임진왜란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았다. 가이드의 설명과 비슷했는데, 더 알게 된 내용들이 있었다. 도자기의 시초는 중국이었고, 그 기술을 발전 시켜서 철분이 함유된 ‘고려청자’가 탄생했고, 그 맥을 이어, 조선시대에는 ‘백의민족’답게 흰 자기를 만들 수 있는 원료가 개발되어 ‘조선 백자’가 탄생했다고 한다. 일본은 그 당시, 토기를 만들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한다.
‘자기’의 기술이 탐났던 ‘히데요시’가 결국, 전쟁을 일으켜 ‘조선 백자’의 유물을 약탈하고 ‘도공’-일본의 표현이며 ‘사기장’이라고 하는 표현이 맞다고 함-을 끌고 갔다고 한다. 7년의 전쟁 끝에 일본은 승리하지는 못했고, 경제적인 피해가 컸지만, 도자기의 기술로 인해 경제 강국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에,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 시기가 있었는데, 전란(전쟁)으로 인해 자기를 구할 수 없었던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일본의 ‘아리타’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자기’가 70년 동안, 이 상인들에 의해 약 700만 점이 유럽의 왕실로 팔려 나갔다고 한다.

나베시마 등 규슈의 영주들은 도자기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제철소를 만들고, 서양의 신무기를 구입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이삼평’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알지 못했던 역사를 배우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했다. 만일,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사기장’들이 끝까지 도자기를 제작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일본은 어떻게 됐을까? 만일, 조선시대에 ‘사기장’들의 대우가 좋았고, 또한, 세계를 무대 삼아 유럽으로 수출이 됐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됐을까?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치과 기공사’가 직업이다 보니, 이런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유럽에서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도자기의 발달이 곧 치과용 Pocelain으로 탄생된 것인데, 따지고 보면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이어온 우리 선조들의 업적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유럽의 많은 치과용 Pocelain 회사와 일본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으로 대단한 자부심이 생긴다.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다시 한 번 고민해본다. ‘치과 기공사’의 합당한 대우는 무엇이며, 그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막상 답하려니,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개선되어져야할 부분은 정확히 말 할 수 있다.

첫째는 기공료의 인상, 둘째는 작업 시간이다. 20여 년 전 군대생활 할 때 병장 월급이 2만 9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IMF가 발생하면서 그 월급도 삭감됐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병장 월급이 40만원 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림잡아 10배 이상이 올랐는데, 기공료의 현실에 허탈감이 느껴졌다.
몇 년 전 TV를 통해 우리나라 도자기 가문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 가문의 대를 물려주기 위한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였는데,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들을 사정없이 깨부수면서, 두 아들에게 던졌던 질문과 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왜 이 도자기들을 깨부수는지 아느냐? 이것들을 깨 부셔야 비로소 남아있는 도자기가 빛을 발한다.”
그 답은 즉, 하나의 값진 고려청자를 얻기 위해 수많은 청자들이 깨 부셔졌다는 게 아닌가? 결국, 하나의 값진 보철물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은 당연하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작업이 끝났지만,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만들어야 할 테니 말이다. 맘에 들 때까지 만든다는 것. 이는 곧, 대우를 받기위한 해결책이 아닐는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기술자 ‘사기장’들을 인정해주고 극진한 대우를 해준 일본은 현재의 경제 대국의 발판을 삼을 수 있었다. 현재의 기공 수가(酬價)보다 좀 더 받게 되고, 작업 시간에 대한 여유를 갖게 된다면, 아마도, 치과 기공분야가 세계로 뻗어나가 미래의 대한민국의 경제 대국의 발판으로 기여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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