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1) Mrs. Gale과 그의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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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1) Mrs. Gale과 그의 가족 이야기
  • 박진호 원장
  • 승인 2019.01.04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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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①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환자이자, 앞으로도 오래 오래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를 유지할 어느 가족과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1999년 여름이었다. 인근 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가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내 치과를 찾아왔다. 치아 치료가 필요한데 시작하기 전에 치과를 방문하고 싶다고 한다. 환자가 궁한 내 처지였던지라 반갑기도 했고, 사전검사를 온다기에 긴장도 되고 그랬다.

30대 중반의 나와 연배가 비슷한 미국 아줌마가 찾아왔고, 나는 형식적인 오피스(치과) 투어를 시켜주었고 이것저것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인자하고 착한 분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돌아갔는데 본인 치료는 시작하지 않고, 그분의 아이들을 하나씩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큰딸, 작은딸, 또 작은딸… 네 번째 아이를 데리고 올 때까지만 해도 아이의 이름을 기억했는데 다섯째, 여섯째… 맙소사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는 것이다. 첫째부터 여섯째까지가 딸이고, 일곱째가 아들이다. 아들을 기다렸나?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허락하는 대로 많이 낳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Wow! 나에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인자하게 생긴 남편까지 총 아홉 명.

남편까지 차례대로 필요한 치과치료를 모두 끝내고, 마지막으로 이 아줌마 치료를 시작하는데 자기가 큰 병에 걸렸다고 한다. 두통이 있어 검사를 하니 이미 손 쓸 수 없는 말기 뇌종양이었다 한다. 아 이런… 이렇게 착한 분이 그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그동안 난 Gale(게일-이 아줌마의 이름)이랑 정이 흠뻑 들어버렸는데… Gale이 자기 충치를 모두 다 치료해 달라고 한다. “치과 치료가 당장 급한 게 아니니 우선은 당신 건강부터 챙기는 것이 좋겠다”고 운을 뗐지만, 그동안 아이들 치료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자기도 나한테 꼭 치료를 받고 떠나고 싶다고 한다. 내 마음이 무너졌다. 정말 눈물을 삼키며 치료를 한 기억이 난다.

Gale의 인품만큼이나 그녀 주위엔 친구들도 무척 많았다. 그 즈음, 그녀 친구들이 ‘큰일’을 하나 벌였는데,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아홉이나 되는 식구 모두를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월드’로 비행기를 태워 여행을 보내준 것이다. 그 비용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 보다 더 큰 Surprise는 플로리다로 여행을 간 사이, 친구들이 그녀의 집을 완전히 뜯어고쳐 새집으로 개조해 놓은 것이다. 나중에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돌아와서 깜짝 놀랐음은 당연하고, 친구와 가족 모두가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난 이 이야기를 지역신문을 통해 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픈 소식과 함께 뜻밖의 소식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Gale은 임신 상태였고 순산을 위해 자신의 치료를 포기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8번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러나, 뜻밖의 소식은 또 있었다. 어렵게 태어난 8번째 막내아들이 다운증후군이란다. Oh no… 그 소식을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어쩔 줄 모른 채 무척이나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조용히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하나 했다. 이제 막 태어난 여덟째까지 아이들 치아 건강은 내가 책임지고 끝까지 가겠다는…

그리곤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들이 커 가면서 점점 엄마를 닮아가는 모습에 문득 놀라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차례대로 정기검진을 오면 자연스럽게 엄마 이야기를 한다. 예전에 엄마가 너에 대해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네가 엄마한테 이렇게 심술을 부리곤 했다. 예전에 엄마가 너는 꼭 이렇게 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등등… 아이들이 너무 많아 내가 하는 이야기가 이 아이 얘기였는지 저 아이 얘기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뭐 아무려면 어떠랴. 내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얼마 전엔 큰딸이 임신을 한 상태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왔다. 그때 Gale 생각이 얼마나 많이 나던지… 이 식구들과의 인연은 내게는 참 크다. 그리고 고맙고… Gale을 생각하면 어느 한 아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Gale이 나에게 보여준 그 인자한 표정을 오늘도 내게 찾아오는 환자들과 나눈다.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다. 현재는 펜실바니아州 필라델피아에서 치과를 운영 중이며, 치과명은 ‘Sellersville Family Dental’이다. 
 
치과 홈페이지 www.DrParkOnline.com   
E메일 smile1896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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