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5)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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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5)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 권호근 교수
  • 승인 2019.02.01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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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⑤

흔히 세잔(Paul Cezanne:1839~1906)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입체파 ‘피카소’와 야수파 ‘앙리 마티스’에 영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피카소는 세잔을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치켜세웁니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세잔의 친구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세잔의 삶을 영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결핍을 예술로 승화시켰듯이 세잔도 괴팍하고 편집증적인 성격이 예술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대상의 모사보다는 사물에 비쳐지는 빛에 대한 감각적 재현을 통해 빛에 의해 변하는 사물의 인상을 재현하는 순간의 미학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인상파의 시도는 사진기의 발명으로 현실을 습관적으로 단순히 모사하는 기존의 회화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광파의 기법은 사물의 윤곽선을 해체하였기 때문에 그림이 명료하지 않았습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세잔은 명료하지 않은 몽롱한 그림 대신 단순하고 깊이감 있는 명료한 그림을 원했습니다. 더 나아가 삼차원의 사물을 이차원인 평면에 어떻게 하면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를 고심하였습니다. 편집증이라고 의심될 만큼 세잔이 사과 정물을 그리는데 몰두한 이유는 아마도 둥근 모양과 밝은 색채를 가진 사과가 이러한 문제를 탐구하는데 좋은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세잔은 여러 시각에서 바라본 여러 개의 사과를 한 화면에 배치하여 사과를 입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피카소에게 영감을 주어서 ‘큐비즘’이라는 입체파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합니다. 또한 밝은 색채의 강조는 앙리 마티스에게 영감을 주어서 야수파 탄생에도 기여를 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힘도 약하고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인 에밀졸라가 중학교 급우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세잔이 구해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사건을 기회로 둘은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절친한 친구가 됩니다.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의 부유한 은행가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편집증과 우울한 성격 탓인지 삶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인상파 화가이면서 비사교적이고 비타협적인 성격 탓에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 거리를 두고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파리 살롱전의 거듭된 낙선은 세잔에게 좌절감을 주었고 이로 인해 우울증도 생겼다고 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약간은 현실 타협적인 졸라와 비타협적인 세잔이 서로의 예술관을 놓고 갈등을 보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에밀졸라가 쓴『작품』이란 소설이 세잔 자신을 모델로 한 모욕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하여 절교를 선언합니다. 그 후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낙향하여 그림에만 몰두하면서 은둔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졸라가 유태인 드레퓌스 대위 사건이 군부가 조작한 사건이라고 폭로하여 지명수배를 받고 엑상프로방스로 도망왔을 때 이를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세잔의 모습이 나옵니다. 실제로 세잔이 유명해져서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에밀 졸라가 전시장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알고 무척 섭섭해 했다고 합니다. 연탄가스 사고로 에밀 졸라가 죽었을 때도 무척 슬퍼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니 절교는 하였지만 둘 사이의 우정은 내적으로는 지속된 것 같습니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는 ‘신경과민증 예술가가 있기에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기에 이들은 세상에 소금과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화가 에곤 슐레, 세잔, 20세기 천재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신경과민증으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침반이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항상 떨고 있듯 이들 삶의 불안한 떨림도 새로운 예술의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전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의 떨림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그림을 보고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2017년 2월 13일>


※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 출판)’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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