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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국민화가 ‘월리엄 터너’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⑬
권호근  |  denfoline@denfo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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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2  10: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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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를 들라 하면 많은 사람들은 쉽게 셰익스피어를 떠올립니다. 한편,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를 떠올리면 언뜻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월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를 언급합니다.

터너는 영국의 풍경을 육안(肉眼)이 아니라 심안(心眼)으로 그렸다는 평을 듣는 화가입니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이전에 이미 빛의 중요성을 인식한 화가입니다. 사물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희미해서 언뜻 보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유사합니다. 인상파는 빛에 비친 사물 변화의 느낌을 그리기 때문에 뇌에서 걸러진 주관적 이미지를 그린다는 점에서 심안(心眼)으로 그렸다는 것도 과장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터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노예선’이란 그림 때문입니다. 한 화가의 그림이 사회를 변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터너가 살던 당시에는 노예무역이 금지되었음에도 공공연히 노예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실상은 무척 비인간적이고 잔인했습니다. 노예상인들은 항해 중에 노예들을 배 밑 창에 가두고 가축같이 대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노예들이 항해 중에 죽거나 병이 들었습니다. 보험 회사에서는 죽은 노예는 보상하지 않지만 행방불명된 노예는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에, 상인들은 병든 노예를 산 채로 바다에 수장해 행방불명으로 처리하고 보험금을 수령했습니다.
시인 제임스 탐슨은 이러한 참상을 <The season>이란 시로 발표하였고, 터너는 이 시를 읽고 ‘노예선’이란 사회 고발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이 그림은 당시 영국사회에 반향을 일으켜 결국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을 금지시키는데 일조합니다. 한 화가의 그림이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을 금지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터너를 ‘시대의 양심’이라고도 평합니다.
터너가 영국의 국민화가로 회자되는 것도 단지 그림 실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런던이나 파리의 화려한 서구문명 뒤에는 근세의 식민주의와 노예무역이라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런던 대영박물관 앨버트 미술관에 전시된 아시아, 특히 한국관의 유물을 보면 약탈된 문화재란 생각이 들어 속이 상합니다. 그러나 인근에 전시된 일본관이나 중국관과 비교해서 한국관의 유물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면 또 속이 상합니다. 참 양면적인 감정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세계 유명 미술관에 전시된 한국 문화재에 대하여 속상해할 것이 아니고, 더좋은 명품 유물이 전시되어서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견 수긍되는 말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제3 세계나 아시아에서의 문화재 약탈을 약탈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수집하여 잘 보관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문화재는 원래 있었던 장소에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다만, 유럽 사람들의 예술품 애호와 사랑은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갖습니다. 또한 조국의 치부를 인류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과감하게 그림으로 고발한 화가, 그리고 부를 쌓은 사람만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자신의 모든 그림을 국가에 무상으로 기증한 월리엄 터너의 예술가 정신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사회정신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터너를 기념하여 세계적으로 젊은 작가의 등용문으로 유명한 터너賞 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가면 터너 특별 전시관이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마침 터너賞 수상 후보자 세 명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작품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사회고발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들입니다. 터너의 영향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5년 5월 18일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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