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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⑩
박진호  |  denfoline@denfo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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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2  10: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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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치과)에서 일을 하다보면 모든 일들이 깔끔하고 기분 좋게 마무리 되는 날이 있다, 좀 드물긴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하루가 큰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기본인 것 같다. 그러다 정말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나의 의지나 잘못과는 상관없이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며칠 전에 바로 그런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오늘의 스케줄을 리뷰를 하고 있었다. 오전은 여유가 있었지만 오후는 거의 지옥훈련 같은 스케줄이었다. 직원들이랑 개인적으로 밀린 이야기도 좀 하면서 여유 있게 오전을 끝냈다.
여유로운 점심시간에 밥도 든든히 먹었겠다 모든 직원들이 화이팅을 외치며 오후진료를 시작하는데…

첫 환자 분이… 치아에 문제가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이었다. 도무지 어디에서 시작을 해야할지 아이디어가 잡히지 않는 그런 심각한 상태였다. 내 머리 속에는 이런 저런 치료방법을 모색하느라 복잡하기만 한데, 그러고 보니 이 할아버지는 처음 본 분이 아니었다. 지역에 ‘Dental Lifeline (https://dentallifeline.org)’이라는 기관이 있는데, 장애가 있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 중에 치과치료가 필요한 분들을 도와주는 곳이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고 있는 우리 병원에 연락이 와서 몇 번 도와드린 적이 있는 분이었다.
그렇게 오시는 분들은 기관에서 현재 상태에 대해 서면으로 연락이 먼저 온다. 보건소에서 1차 검진과 Diagnosis를 하고, 또 현재의 재정상태까지 자세히 기록한 리포트가 오면,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한다. 여러 번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환자가 직접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관에서 모든 스케줄 관리를 도와준다.

다시 오신 이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그 프로그램을 통하지 않고 그냥 오신 것이었다. 그런데 치아 상태가 좀 심각했다. 다 빼고 틀니를 하자니 건강한 이가 너무 많고, 상한 이를 다 치료하자니… 어떤 방법을 택하든 치료기간이 결코 짧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나올 것이 분명했다. ‘Dental Lifeline’에 연락을 해보니 이 할아버지의 케이스는 벌써 Close 되어 새로 Case를 오픈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하고. 그것도 사회복지사가 가운데 들어야 시작이 되는 것이라 한다.
결국, 행정적 절차가 선행돼야 진료가 가능한 분이라는 얘기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겨우 말을 꺼냈는데… “우선은 항생제를 처방해 드릴테니 그것 먼저 드시고 Infection을 먼저 Control하고, 다시 한 번 어떤 치료가 좋을지 생각해 보자”고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대뜸 “그 약이 비싸냐”고 물으신다. 지금 은행에 15달러 밖에 없다고. 다음 달이 되어야 정부보조금 Social Security가 들어온다고.

아이고 이런… 어쩔 수 없이 Medicaid(극빈자보험) 받는 오피스(치과)를 찾아보시라고. 거기서 치료를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오피스는 많지도 않을 뿐더러 제대로 된 치료가 힘든 것을 너무도 잘 아는데, 그렇게밖엔 말 할 수가 없는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아니, 굉장히 힘들었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그분을 쫓아내는 그림일 수밖엔 없지 않는가. 극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마음 또한 울적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눈만 껌뻑 껌뻑하고 있는 그 할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그 뿐이라니. 날 도와줘야 할 스탭들은 다들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내 에너지가 한 올도 남지 않고 다 빠져나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오후 내내 괴롭고 울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찜찜한 마음을 안고 반쯤 넋이 나간 채 간신히 오후 진료를 마칠수 있었다.
마치 좀비가 된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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