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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와 니체, 그리고 ‘에곤 쉴레’
권호근  |  denfoline@denfo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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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3  09: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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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2017년 시점) 화가의 삶을 주제로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하나는 폴 세잔느를 주제로 한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느>와 에곤 쉴레를 주제로 한 <욕망이 그린 그림>입니다. 세잔느는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이지만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화가입니다. 그러나, 에곤 쉴레는 빈 분리파를 주도한 화가 구스타프 크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더불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몇 년 전 학회 참석차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했을 때 에곤 쉴레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레오폴드 뮤지엄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너무 외설적이어서 당혹스럽고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백 년 전에 어떻게 이처럼 도발적이고 발칙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도 함께 생겼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오스트리아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인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전쟁을 앞둔 긴장감이 돌았지만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를 즐기는 새로운 학문과 예술이 태동하는 유럽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당시 빈에 거주하던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의 의식 아래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발견을 통해 칸트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제적으로는 일종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서양 철학사에 획기적인 한 획을 그었습니다. 특히 잠재된 무의식의 주된 실체는 억압된 성적 본능이고 이러한 성적 본능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동력이자 핵심이라고 주장하여 여러 논란을 야기합니다. 쉴레의 예술 세계는 프로이드가 주장한 억압된 욕망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8세로 요절한 쉴레는 자신의 멘토인 크림트가 조직한 빈의 분리파 회원으로 활동하였는데, 분리파란 이름이 의미하듯 기존 미술계와 절연하고 획기적이고 새로운 미술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매독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 이상으로 사망하는 쉴레 아버지가 죽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15살에 맞은 아버지의 죽음은 쉴레에게 평생 정신적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강박적 성격의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 초반부에 자신의 누드모델이었던 여동생과의 근친상간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쉴레 아버지는 쉴레의 여동생과의 근친상간에 대한 의심으로 무척 노심초사하였다고 합니다. 쉴레의 이러한 금지된 잠재적 성적 욕망은 성적 히스테리로 나타나 자기 학대적인 자위행위를 하는 누드 드로잉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크림트와 자신의 누드 모델이던 발리 노이질의 음부를 드러낸 누드 드로잉과 같은 외설적 그림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실 쉴레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예술 작품인지 포르노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성기를 노출시킨 자신의 누드 드로잉 작품은 쉴레의 나르시즘적 자기애의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쉴레는 니체(Friedrich Nietzsche : 1844~1900)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모든 가치관을 때려 부수면서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망치 철학자 니체는 특히 기독교의 도덕적 가치관을 거부합니다. 니체는 예술이란 도덕에 얽매임 없이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하나의 유희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예술가에 있어서 도덕은 최대의 위험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예술가란 창조와 파괴의 신 디오니소스를 숭배하고 기존 체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창조와 파괴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운명도 기꺼이 감내하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이 니체가 주장하는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애, 運命愛)’입니다.
사회적 금기에 과감하게 도전해 자신의 잠재된 욕망을 예술로 표현한 화가, 때문에 비난도 받았고 소녀를 성적으로 유혹한 혐의로 감옥생활도 했지만,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고 자신의 운명에 적극 도전하다 스페인 독감으로 요절한 화가, 바로 에곤 쉴레입니다. 2017년 1월 31일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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