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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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⑰
  • 덴포라인
  • 승인 2020.02.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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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스 그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멜 깁슨 감독이 사재를 들여 제작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란 영화가 오래 전에 상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영 전부터 예수를 죽인 것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부각해 유대인 단체로부터 항의 소동을 겪는 등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기 전 12시간의 행적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재현하였고 특히 고문 장면이 너무 잔혹해 사디스트적인 영화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주 잘 만든 영화입니다.
회화에서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버전이 바로 마티아스 그네발트(Matthias Graunewald 1470~1528)가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입니다. 영국 가디언紙는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걸작선 20개 중 하나로 이 그림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중세 제단화는 문맹 신자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이 제단화도 예수의 탄생, 십자가 죽음, 부활을 주제로 한 경첩형의 제단화입니다. 이 제단화가 특히 유명한 것은 15세기에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십자가의 예수 죽음을 너무나 인간적이고 처절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 성화(?츐)는 대부분 예수를 성스럽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고통에 괴로워하는 예수의 모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의 고통을 반영하듯 십자가는 휘어져 있고 손가락은 고통으로 경직되어 하늘을 향합니다.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복을 입고 실신 일보 직전의 성모마리아가 눈에 띕니다. 복음사가 성 요한은 이러한 성모마리아를 부둥켜안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제 그림 아래편을 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절규소리가 그림을 뚫고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른편 세례자 요한이 예언서를 들고 예수의 부활을 외칠 동안 아래쪽에서는 상처투성이인 예수 시신을 미리 준비한 석판 위에 눕히고 있습니다. 이 제단화도 예수가 십자가의 고통을 받는 그림을 통하여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동병상린 감정으로 위로할 목적으로 제작된 그림입니다.
14세기 유럽은 페스트 창궐로 전 지역이 대부분 초토화되었습니다. 당시 역병이 창궐하였을 때 대응 방법은 교회에 모여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보건학자들은 중세에 페스트 피해가 심했던 이유는 격리가 필요한 전염병 창궐 시기에 집단으로 모여서 기도를 한 것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많은 수도사들이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고 위로하기 위해 헌신했지만 과학적 대응을 못하고 종교적 대응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습니다.

저명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이 제단화 그림을 자신의 서재에 항상 걸어 두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종교를 통해 안식과 위로를 찾기보다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단화를 그린 그릐네발트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해한 화가입니다. 많은 유럽인들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콜마르를 방문합니다. 콜마르는 스트라스부르그 남쪽 100킬로에 위치한 조그마한 도시로 2차 대전 당시 피해를 받지 않아 중세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콜마르에 가면 수도원을 개조한 고풍스런 운터린데 미술관을 한번 방문하기를 권합니다. 2015년 7월 13일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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