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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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⑨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0.02.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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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거짓말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진료실에서 별 문제 없이 치료를 잘 받고 나간 환자가 상담실이나 데스크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불만을 호소하는 경우를 의사라면 한번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의사인 나한테는 컴플레인을 하지 않고 고분고분하던 환자가 왜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걸까?
환자는 자신을 치료해 주는 의사에게 쉽게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의사에게 밉보여 치료에 영향을 미칠까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환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라포(Rapport)가 형성되지 못하면 치료의 예후도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환자와 의사의 관계만큼 진실 되기 어려운 관계도 드물다.
환자의 일부는 과장되게 이야기하고 또 일부는 축소해서 이야기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환자에게 너무 솔직하게 모든 사실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안 되고 생존율이 낮더라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의사는 없다. “환자분, 3개월 후에 당신이 살아있을 확률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거의 죽는다고 봐야죠”라고 말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병원검색 사이트를 운영하는 ‘QLife’(큐라이프 도쿄都)의 조사에 의하면 환자의 30%가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증상에 대한 작은 거짓말까지 포함시킨다면 그 비율은 더 커질 것이다. 조사한 거짓말의 내용을 많은 순서대로 정리하면 △증상(실제보다 더 아프거나, 덜 아프다고 말한다) △복약상황(먹는 약을 숨긴다) △생활습관(운동을 하고, 담배를 끊었다고 거짓으로 말한다) △수치(키, 체중, 체온 등) △원인(원래 안 좋았는데 사고로 생겼다고 한다) △의료기관 중복진료(이미 다른 곳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순이었다. 거짓말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료비를 낮추려는 등의 목적이 확실한 적극적 거짓말과, 의료인과의 관계상의 입장이 난처해서 말한 소극적인 것으로 크게 나뉜다.
예를 들어, ‘약값이 부담스러워 증상이 좋아졌다고 거짓으로 말했다’, ‘다음날 일을 해야 해서 통증이 없어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체중관리를 못했다고 야단 맞을까봐’, ‘간호사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서 담배를 안 핀다고 했다’ 등이다.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치료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이는데 괜찮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을 치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폭행을 당하고 오거나, 산재로 진단을 받는 경우에는 증상을 훨씬 더 과장되게 이야기 한다. 담배냄새가 나는데도 끊었다고 하고, 낮술을 먹고 와서 얼굴이 벌겋고 술 냄새가 나는데도 모른 척을 한다. 사실 이런 눈에 훤히 들어와서 들통 나는 거짓말은 애교스럽게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의료정보를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말할 경우 처방이나 진료 자체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공의들에게도 환자의 거짓말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환자가 술을 1주일에 4잔 마신다고 하면 8잔 이상으로 생각하라고 배운다. 담배, 중독성 약물 등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거짓말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오랜 시간 대화를 해야 하는데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의사들의 문진은 단순한 Q&A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술을 얼마나 드세요?”, “일주일에 운동은 몇 번이나 하세요?”처럼 단답식 답변을 요구하는 것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환자는 의사에게 마음 편하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 어렵다. 환자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근원에는 이런 불편감이 있는 것이다.

“저는 기분이 좋을 때 술을 마시는 편인데, 환자분은 어떠세요? 요즘 좋은 일 때문에 술을 좀 드시나? 아니면 기분 나쁠 때 드세요?”, “그래도 전보다는 몸이 좀 좋아보이시는데, 요즘 운동 좀 하시나 봐요? 어떤 운동을 좋아하세요?”라고 대화식으로 질문을 하면 단순한 답변보다는 조금 더 자세하고 의미 있는, 그리고 솔직한 답변을 듣게 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조금만 더 환자와의 대화에 시간을 투자하자. 진단과 치료의 예후에 도움이 된다면 해야 한다.

진실의 의무 vs 거짓의 권리
타인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은 의사도 마찬가지다. 미국 하버드의대 Lisa lezzoni 교수팀이 의사 1,8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답변한 의사의 55% 이상이 “환자의 예후를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설명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환자를 화나게 하거나 희망을 꺾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시술에 대한 소송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의사도 환자에게 솔직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lezzoni 교수는 “때로 거짓말이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므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의사들의 경우 반드시 부정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사는 환자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환자 대부분이 가능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의사가 진실 되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고된 조사도 있다. 그렇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진실을 인정하기 싫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신생아가 곧 죽을 거라고 보호자를 보고 진실되게 얘기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또 기적을 바라는 보호자를 탓할 수도 없다.

의학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의 암 극복기는 이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후기에서 공통적인 것은 바로 환자의 희망이었다. 의사가 의학적 소견을 수치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의사의 희망적인 말 한마디가 가지는 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의사는 환자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환자의 희망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 단순한 통계적 수치의 언어가 아닌 영혼이 담긴 말이 필요한 이유다. 의학적으로도 위약 처방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처럼 의사의 말이 위약의 효과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의무와 거짓을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의 삶에 늘 존재한다. 질실을 말하지 않아서 희생당한 사람, 진실을 말해서 희생된 사람, 거짓말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 거짓말 때문에 성공한 사람. 아이러니다. 환자의 거짓말과 의사의 거짓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거짓을 통한 신뢰의 회복을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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