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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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⑱
  • 권호근
  • 승인 2020.03.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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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모던 미술관과 이우환 화백

아마도 세계 3대 현대미술관을 들라고 하면 파리의 퐁피두센터, 뉴욕 MoMA(Museum of Modern Art), 그리고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듭니다. 제가 보기에 이 세 미술관 중 가장 현대 미술의 흐름과 철학을 잘 표현하여 건립한 미술관이 테이트모던 미술관입니다.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밀레니엄 브리지와 함께 런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0년에 개관한 미술관입니다. 시내 중심부 템즈 강변에 위치했던 화력발전소 건물을 헐지 않고 건축가 헤르조그와드 뫼론(Herzog &De Meuron)이 원형을 그대로 살려 멋진 현대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저도 한국 사람인지라 외국 유명 미술관에 가면 혹시 한국 작가 작품은 전시된 것은 없는지 눈을 비비고 열심히 찾아보지만 대부분 찾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어서 몹시 기뻤습니다.
잘 알다시피 이우환 화백은 백남준 선생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예술가입니다. 이 두 분만이 한국 예술가로서는 유일하게 뉴욕의 구겐하임 현대미술관을 전관을 대여하여 개인전을 개최하였습니다. 백남준 선생은 영면하였기 때문에 현재 살아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가는 이우환 화백뿐입니다. 이화백은 작년(2014년)에 베르사유 궁에서 설치작품전을 개최한 바 있고 올해(2015년)는 부산에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했습니다.
이우환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철학을 공부하고 모노하(物派) 운동을 시작한 작가입니다. 모노하 운동은 1960년대 후반 일본사회의 고도 발전기에 대한 반성과 기성문화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입니다.
어찌 보면 이우환 화백은 화가이자 철학자입니다. 현대 미술은 철학적 사유를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따라서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이우환 화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동양적 사유를 회화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년 전 현대 화랑에서 열린 이우환 개인전에 초대를 받아서 간 적이 있습니다. 전시된 작품 모두 하얀 캔버스에 장방형의 회색점을 하나씩 그린 작품들입니다. 문 같기도 하고 오지항아리같은 묘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입니다. 하얀 캔버스에 점 두 세 개씩 그린 작품은 모두 이 화백 작품이라 생각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단순한 그림인데 작품 값은 무척 고가입니다. 작품 제작 과정 영상을 보니, 점을 하나 그리는데 한 번에 그리는 것이 아니고 이삼일 후에 마르면 또 같은 부위에 덧발라서 그리기를 이십 회 이상 반복합니다. 마치 선승들이 도를 닦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이우환 화백의 화실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미술학도들이 와서 연수를 받는데, 한국학생과 외국학생 간 다른 점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 학생들은 오자마자 짐을 풀고 열심히 그리는데 외국 학생들은 한 달간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빈둥거리며 소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작품을 보면 외국 학생들 작품이 훨씬 좋다고 합니다. 이유는 외국 학생들은 시작할 때 빈둥거리는 것 같지만 시작하기 전에 개념을 잡느라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은 개념 없이 무조건 열심히 그리기 때문입니다. ‘열심히’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방향 없이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은 한국의 예술전공 학생들도 일반 학생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20세기는 3차 산업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시대이기 때문에 무조건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오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인 오늘날에는 개념 없이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 치과대 학생들도 개념 없이 무조건 열심히 외우고 깎아대는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6월 1일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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