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⑳ 귀한 직업과 경건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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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⑳ 귀한 직업과 경건한 직업
  • 권호근
  • 승인 2020.05.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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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자주 강조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직업에 귀천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손과 육체를 쓰는 직업은 천한 직업이고 ‘펜대’를 놀리는 직업은 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서입니다. 또한 귀한 직업이란 부와 명예가 따르지만 많은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혼합된 진료를 하고, 수입도 많지 않은 치과의사 직업은 1960년대 만해도 한국인들의 정서나 기준으로 보면 귀한 직업으로 간주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치의학의 발달과 이에 따른 치과의사의 경제적 수입증가로 인해 현재의 치과의사는 되기 힘든 귀한 직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입이 좋다는 이유 또는 되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치과의사가 귀한 직업이라고 간주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경제적인 수입이 줄어들면 치과의사란 직업은 언제든지 천한 직업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은 <치과의료윤리> 수강 후 한 학생이 쓴 윤리 에세이 리포트의 일부입니다.

학생 시절에 돈을 내고 내가 직접 구두를 닦아본 적이 없던지라 구두닦는 아저씨가 구두를 닦는 과정을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은 그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옆에 앉아 구두가 모두 닦여지길 기다리며 그 아저씨가 구두에 광을 내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내심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햐~어찌도 저리 정성스럽게 닦을까”
솔직히 구두 닦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란 것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려울듯싶다. 하지만 난 그가 구두를 닦는 과정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 언제나 그의 구두 닦는 모습을 가장 적절히 묘사할 만한 한 단어가 떠오르곤 하였다. 그 단어는 바로 ‘경건’이란 단어였다. 그래, 사람이 구두만 정성껏 닦아도 정말 그 사람이 경건해보이고 귀해 보이더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구두 닦는 모습을 바라본 느낌이다. 한국에서 28년을 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인의 정신 상태를 열거하자면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난 ‘먹물근성’을 들고 싶다.
바로 그 먹물근성이 손으로 일하는 것을 천시하는 사회 기풍을 낳았으며, 사회 곳곳에 마이스터의 양성을 가로막아 과학기술 발전에 근본적인 걸림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구두만 정성껏 닦아도 경건해 보이는데, 하물며 타인의 입에 들어갈 보철물을 만들고 치아를 깎는 치과의사나 기공사, 치위생사 직업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마도 세상에 귀한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귀하게 만드는, 그것을 행하는 이의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그렇습니다. 이 학생의 말대로 오늘날에 있어서는 천한 직업과 귀한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업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달린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해 한 가지 일에 몰입해서 작업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지식이 많건 적건 지위가 높건 낮건 경건함을 느낍니다. 나이 들어서 깨닫게 된 것은 손을 사용하는 직업은 모두가 경건한 직업이라는 점입니다. 인체의 중심은 심장이나 머리가 아니고 신경이 집중되는 곳이 바로 신체의 중심입니다.
미켈란젤로가 하나님이 아담의 생명을 부여하는 순간을, 손을 통한 전달로 묘사한 장면을 보더라도 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조각가에게는 손이 바로 신체의 중심이자 바로 경건성을 상징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면 볼수록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천재성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손을 사용해야 하는 치과의사도 귀한 직업이라기보다는 경건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는 치과의사란 직업이 국민에게 귀한 직업이라기보다는 경건한 직업으로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귀함을 뛰어 넘는 것이 경건함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 10월 5일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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