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25) 우리 모두 전염병 관리 책임자인 大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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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25) 우리 모두 전염병 관리 책임자인 大醫다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0.09.3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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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회 경제를 마비시키고 개인의 일상을 변화시키면서 한국 사회를 위기로 몰아놓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병원체와 끊임없는 군비경쟁을 하면서 투쟁하고 공존한 역사입니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에 의하면 인류 문명이 아메리카 대륙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먼저 시작된 이유가 유라시아 대륙이 아메리카 대륙보다 가축화를 할 수 있는 포유류 종류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농경 문화가 먼저 시작된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축과 밀접한 접촉을 하면서 가축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전파되어 치명적인 전염병이 됩니다. 최근의 사스,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천연두, 홍역, 에이즈 바이러스는 모두 포유류에서 인간에게 전파된 바이러스로 추정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시작된 천연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아메리카 대륙에 전파되어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사망하게 합니다. 스페인 장군 코르테즈가 6백 명도 안되는 군사로 수천만 명의 남미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고, 200명도 안되는 스페인 군대가 잉카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도 천연두 균을 이용한 세균전 때문에 가능헀습니다. 북미의 호전적인 인디언 부족을 전멸시킬 방법으로 유럽인들이 천연두 균이 감염된 모포를 선물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크린(1898)의 페스트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크린(1898)의 페스트

시카고 대학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그의 저서 ‘전염병과 인류 역사’에서 인류 문명과 같이 시작된 전염병이 인류 역사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기원전 430년경 아테네를 강타한 전염병은 지도자 펠리클레스와 아테네 인구의 25%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AD165년 로마에서는 천연두로 추정되는 안토니우스 전염병이 창궐하여  6천만 명에서 7천만 명이 사망하였고, 로마 멸망 원인 중 하나가 매독으로 추정되는 성병 창궐로 인한 인구 감소라는 설도 있습니다.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전파된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하여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18세기까지 유럽에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멸망 역시 결핵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하나의 원인으로 들고 있습니다. 조선왕조가 망한 원인 중에 하나 역시 임진왜란 이후 창궐한 전염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농업 생산력 감소 때문입니다.

유럽의 제국주의 시절에는 세계 최초로 설립된 보건대학원인 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 명칭에서 보듯이 열대지방 풍토병 관리는 영토 확장과 식민지 경영에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파나마 운하 건설은 프랑스에서 먼저 시작하였으나 중남미 풍토병인 황열병(yellow fever) 예방 및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해서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이 예방법을 개발하여 파나마 운하를 완공하게 됨으로써 중남미는 미국의 앞마당이 됩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풍토병 관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시에는 전염병 관리가 중요한데, 사망자의 대다수가 포탄이나 총 맞아서 죽는 것이 아니고 기아와 위생 상태 악화로 인한 전염병 유행으로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1차대전 때에도 많은 군인이 참호전으로 인한 전염병 티푸스로 사망하고, 미국 남북전쟁 중에도 사망자의 70%가 전염병으로 사망합니다. 그 때문에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보건학과 전염병 관리체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합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듯이 전염병 확산은 교통망과 교역의 확대로 현재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전 세계적으로 퍼집니다. 그 때문에 전염병 관리는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모든 국가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인류 전체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병원체와 투쟁은 인류의 과거, 현재를 통하여 지속되어 왔고 미래에도 지속될 것입니다. 미생물학자 <르네 듀보>는 저서 “Mirage of health”에서 인류가 질병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환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맨 하방에 있는 미생물은 맨 위의 포식자인 인간의 천적입니다. 전염병에 의해서 인류의 개체 수가 조절되어 생태계가 균형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병원체가 박멸되는 환경에서는 인류 생존도 불가능합니다. 병원체는 끊임없이 변이하기 때문에 박멸하기보다는 공생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공생 방법은 모든 국민이 전염병 방역에 적극 참여할 때 가능합니다. 

제가 대학원 보건학과에 입학하여 첫 강의를 들었을 때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설립한 양재모 교수께서 ‘小醫는 治病하고 中醫는 治人하며 大醫는 治國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전염병을 관리하는 보건학 전공자는 治國하는 大醫이니 자부심을 가지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전염병의 위험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하는 현재에는 전염병 관리는 보건공무원이나 보건학자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전 국민과 모든 의료인이 참여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날에는 小醫, 中醫, 大醫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모든 국민과 의료인들은 전염병 방역을 통한 治國에 책무가 있는 大醫들입니다. 병원을 접고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인들을 보면 아직도 한국에서 의료 정의는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월요편지 가족 여러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잘 대처하고 건강에 유의하여 현재의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바랍니다. 

※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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