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24) 이민사회와 치과 1 - 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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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24) 이민사회와 치과 1 - 미대선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0.12.0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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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미국 대선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느낌이다. 현 정부에서 승복 인정 발표가 나지 않은 데다, 코로나 환자의 또 다른 급증으로 사회적 혼란은 대선 이전보다 더 악화된 것 같은 분위기다. 우리 병원이 위치한 동네 이야기를 잠깐 하면 이런 대선으로 인한 혼란이 좀 더 피부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미 대선이 있을 때마다 내가 살고 있는 펜실베이니아가 제일 중요한 주로 떠오른다. 마지막 대선에서는 펜실베이니아가 전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 Casting Vote 역할을 했었다. 인구수 비례로 정하는 선거인단의 숫자가 20명으로 펜실베이니아가 상당히 높고 (참고로 뉴욕 24, 뉴저지 14), 주민들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비율이 비슷해, 늘 한쪽으로 기울어진 주와는 달리 선거 때마다 대통령 후보가 여러 차례 방문을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주이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처럼 큰 도시가 많이 있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거의 모두 민주당이고, 공업이나 농업이 성한 곳은 공화당이 우세하다. 그래서 선거에서 후보가 어느 주를 많이 이기느냐 보다는, 사람이 많은 주를 누가 많이 차지하느냐가 중요 관점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에는 67개의 County가 있는데 그 County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격하게 나누어진다. County 숫자로만 따지면 공화당이 압승이나, 사람들이 많이 사는 필라델피아나 피츠버그 같은 대도시가 있는 County는 모두 민주당 쪽이다. 그러니 펜실베이니아주는 미 대선에서 미국 전체의 정확한 미니어처 같은 곳이다.

우리집은 필라델피아에서 20분 떨어진 곳이다. 흔히 큰 도시 옆에 있는 Suburban 지역의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은 한국, 중국, 인도 출신이 많아 다인종이 흔히 보이는 곳이기도 한지라, 선거의 경향이 민주당, 공화당이 거의 정확히 50:50으로 나누어진다. 선거철이 되면 집 마당에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들의 팻말이 즐비한데, 우리 동네만 보더라도 백인들의 가구는 대부분 Trump 후보의 지지 사인이 붙었고, 그렇지 않은 집들은 Biden 사인이 대비를 이뤘다.

우리 병원이 있는 곳은 집에서 더 외곽으로 15분 밖엔 떨어져 있진 않지만, 그 동네에서 Biden 팻말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집단행동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5월 필라델피아 시내에서는 George Floyd의 희생으로 BLM (Black Lives Matter) 피켓을 든 시위가 한참일 때, 우리 병원이 있는 동네에서는 그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 8명의 직원이 있는데 모두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들이다. 오는 환자분들의 정치성향도 다르지 않다.

생각하면 걱정이 슬며시 들 때도 있다. 모두들 그렇게 한쪽으로 열렬한 지지자들인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외모상 누가 봐도 자기들이랑 같지 않은 내가 그들의 정치 성향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을 것 같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동네에서 비즈니스 피해를 보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선거유세가 치열해질 무렵, 직원들에게 Remind를 했다. 병원 내에서는 절대 정치 이야기를 금지하라고. 나 자신의 정치성향을 떠나서, 우선은 우리가 정해 놓은 병원 규정에 정확히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환자분들과 그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목적에 따라가지 않는 부수적인 신경 쓰임은 최대한으로 피하자고 말했고 모두가 동의를 했다.

아직도 사회적인 편 가르기 분위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아 불안감은 남아 있다. 코로나의 새로운 기승으로 이 이슈가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민자의 불안한 정체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지금의 현실이다.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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