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1) 믿음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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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1) 믿음과 깨달음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1.04.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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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지난 20세기 세계를 주도하고 지배한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은 서구사회의 주류 종교라는 점도 있지만 기독교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직접 다루고 창조의 신비스러움을 강조하는 종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을 접목함으로써 교리의 철학적 보편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리스 철학과의 접목은 인간의 삶속에서 살아 숨쉬는 기독교 신앙이 교조적 교리화되어 많은 이단 논쟁과 끔찍한 종교 재판이라는 비극을 발생시키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절대화된 교리는 교회 권력을 절대화하여 면죄부 판매와 같은 교회 부패를 야기합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계몽주의 이후에 유럽에서는 교리의 갈등이 없는 종교를 꿈꾸게 되고 이성에 입각한 理神論이 대두합니다.

구정토진종의 시조 신란의 영정. 타력 불교 성격인 정토진종 때문에 서양인들이 일본 선불교를 비교적 쉽게 이해한다
구정토진종의 시조 신란의 영정. 타력 불교 성격인 정토진종 때문에 서양인들이 일본 선불교를 비교적 쉽게 이해한다

많은 계몽 철학자들은 이신론을 신봉하였고 미국 헌법을 기초한 제퍼슨도 이신론자입니다. 제퍼슨은 이신론에 입각하여 성경의 비과학적인 내용은 모두 삭제한 이신론 성경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신론 대두의 또 다른 이유는 계몽시기 이후의 급속한 과학 발전의 결과입니다.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천동설에 입각한 중세 기독교 우주관에 타격을 주었고 다윈의 진화론은 창조론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신론에 입각한 종교관은 신앙의 본질인 신비함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의 행태를 서구의 정통 신학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신비로움을 훼손시킨다고 비판합니다.
현대 저명한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한 개인이 절대적인 고독과 마주하는 것을 종교의 시작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머물면서 절대적인 고독을 경험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과학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기 때문에 타력 종교, 즉 믿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반면 불교는 자력으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깨달음의 종교이므로 자력 종교라고 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송광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할 때 보면 많은 승려들이 결혼도 안하고 평생을 선방에서 가혹한 수행을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스님들이 자신들의 염원인 成佛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득도는 어려운 경지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부처님의 가호가 없으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어려운 불경도 잘 모르고 생활에 바쁜 일반 국민들이 불교의 깨달음을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불교의 깨달음도 부처님의 가호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불교도 일종의 타력 종교입니다.

일본에 신란(1173-1263)이 창시한 정토진종이란 불교 교파가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 일본은 전국 시대이므로 기층 민중들은 전쟁과 굶주림, 지배층의 착취로 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불교는 귀족과 지배계층의 종교였기 때문에 국민의 고통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승려 신란은 무학자로 불경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득도를 할 수 없음을 무척이나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득도를 염원한 결과 어느 날 홀연히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간절히 아미타여래에 염원하고 염불을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정토진종을 창시합니다. 정토진종은 당시 도탄에 빠진 일본 농민들을 구원하는 종교로 발전하여 오늘날에도 주요한 불교 종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란 이전에 이미 신라의 원효대사가 간절히 염불만 외워도 극락왕생한다고 주장하고 농민들에게 불교를 전파한 바 있습니다.

‘종교 간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는 카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g)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대표적인 세계적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는 21세기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는 서로 소통하고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0세기의 큰 사건 중 하나는 불교가 서구로 전파된 것이라는 김용옥 교수의 방송에서 한 말이 기억납니다. 미래의 종교는 믿음과 함께 깨달음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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