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23)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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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23) 기대감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1.04.0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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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가장 쉽게 명의가 되는 방법은 기대감이 없는 환자만 골라서 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환자가 만족감을 표현할 때 멋쩍었던 적도 있었고, 예민한 환자라고 해서 온 직원이 마음을 써서 신경을 썼는데 ‘실망이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사람을 보고 혀를 내두른 적도 있다.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갖는 환자가 얼마나 임상에서 어려우면 교과서에서조차 그 기대감을 조절해야 한다고 나왔을까 싶다. 학생 때 배웠을 때는 환자가 기대를 해봤자 예측 가능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상의 현실은 그 도를 넘어설 때가 정말 많다.

기대감이 지나치게 없는 나머지 ‘무관심’한 환자를 개인적으로는 사실 더 싫어한다. 기대감이 높으면 그 기대감을 파악하고,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거나 노력해서 결국 만족을 시켜서 뿌듯함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무관심한 환자는 강요 때문에 치료를 시작해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고, 문제가 생기면 치료를 포기하거나 설명을 하고 노력해도 그 어떤 반응도 없기 때문이다. 리액션이 없는 상대와의 대화는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대감은 의사가 채워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것이 최고다.

역사적으로 과학적인 의학은 기적에 가까운 업적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아직은 인간의 질환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많다. 의학적 지식이 방대하게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부분은 여전히 많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는 현대의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죽음이나 노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고에 의한 심한 손상이나 선천적인 장애도 정상으로 만들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장병, 퇴행성 신경 질환, 자가면역 질환, 관절염 그리고 대부분의 암 등도 특별한 해결 방법이 여전히 부족하다. 

과학이 매우 급속도로 발전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이런 질병들을 정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질환들은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이 평생 관리되어야 한다. 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증상을 가라앉히고 질환이 악화되는 속도를 줄여주고, 환자에게 자신감을 느끼도록 하고, 질환으로 환자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정도다. 그것마저도 환자가 의학이 할 수 있는 부분만 기대할 때 가능하다.

기대감을 키우는 환경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거짓말들을 너무나 쉽게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환자들은 불가능을 기대한다. 본인의 증상이 경감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가능하지도 않은 치료를 요구하고, 병원들의 지나친 경쟁으로 생겨난 과장된 광고는 이런 불합리한 기대감을 더욱 부추긴다.

치과 치료의 특성은 환자의 기대를 부추기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고가의 치료가 많다는 점이다. 목돈이 많이 들어가는 치료는 당연히 들어간 돈에 비례해서 기대감이 높다. 둘째, 치과는 소개환자가 많은 편이다. 소개환자는 좋은 소문을 듣고 온다. 그것은 이미 기대치를 높게 잡고 찾아왔다는 얘기다. 셋째, 새로 해 넣는 치료가 많다. 상실된 치아를 새로 해 넣으면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옛날의 기억이란 것이 이상하게 좋은 것만 있다. 하나도 아프지 않고 잘 씹어먹던 기억 말이다.

일상이 기적이 될 수 있다
의술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는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는 곳도 의료의 현장이다. 그 이유는 치료할 수 없을지 몰라도 치유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이 가진 한계가 있지만, 희망은 그렇지 않다. 나는 100년 전 에드워드 트루도(Edward Trudeau) 박사가 한 말을 여전히 좋아한다. 

“치료는 가끔 하고,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일은 자주 하고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항상 하라.” 기적은 환자를 편안하게 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상실감이 극에 달해서 오는 환자가 늘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치과다. 잘 씹어먹지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와 건강염려증, 보기 싫은 앞니 때문에 잘 웃지도 못하는 대인기피증 환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 치과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찾아온 환자 등. 작은 기적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치료보다는 치유를 위해서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의 기대감을 관리하라
“송곳니가 왜 송곳니겠어요? 송곳처럼 뾰족하니까 송곳니지.” 환자한테 종종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운 송곳 같은 치아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앞니 보철물을 다 해 넣는 환자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뾰족한 송곳니와 함께 어우러진 앞니가 예뻐서 사진도 찍고 자랑스럽게 거울을 보여줬는데 송곳니가 싫단다. 그래서 위의 말을 해줬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그래도 저는 싫어요.”였다.

환자의 기대감을 현실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더해 중요한 것은 바로 기대감과 환자의 경험을 일치시켜주는 것이다. 환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터치해야 한다. 즉 환자의 핫버튼을 제대로 파악해서 눌러주어야 한다. 절대 아프지 않게 치료를 받기 원하는 환자에게는 예쁘게 치료하는데 아픈 것쯤은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아프지 않게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를 보여줘야 한다. 비싸도 제대로 꼼꼼한 치료를 원하는 환자에게 값싸고 빠른 치료를 했다고 자랑해서도 안 된다. 의사 스스로 치료에 대해 뿌듯해하더라도 환자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다.

환자가 의사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듯이 의사도 환자에 대한 기대가 있다. 교과서에서 읽어보았던 ‘이상적인 환자’, 즉 긍정적이고 치과의사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환자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무관심한 환자, 비판적인 환자, 회의적인 환자로 넘친다. 

그러나 마음껏 의사를 바꿔가면서 기준에 맞는 치과의사를 찾아다니는 환자와 우리는 분명 다르다. 특별한 사유 없이는 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환자의 기대감을 낮추고, 그 기대감의 종류와 경험을 일치시켜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체어사이드 인생에서는 끝까지 지켜야 할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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