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25) 환자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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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25) 환자의 질문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1.06.0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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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치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원내생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론과 실습을 통해서 익혔던 내용이 실제로 어떻게 임상에서 쓰이는지 직접 볼 수 있다. 그리고 교수님과 수련의들의 지도하에 스케일링, 간단한 충치치료, 발치 등을 처음으로 직접 해볼 수 있는 시기다. 1년 정도 시행되는 이 시기 교육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환자에 익숙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수와 수련의는 학생이 없었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았을 것들까지 환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환자 앞에 적나라하게 놓인 원내생은 자칫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해 환자에게 민망해지기도 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수련의와 환자에게 욕먹고 혼도 나면서 환자를 열심히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환자를 대하는 것이 조금은 익숙하고 편해진다. 의사가 행하는 진료는 환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문진’과 미러와 익스플로러, 치주탐침 등을 이용해서 환자를 검사하는 ‘진찰’, 의심이 되는 병을 진단하기 위해서 다양한 ‘검사’를 하고, 약이나 수술 등의 ‘치료’를 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원내생 기간 동안 주로 담당하는 것은 문진과 진찰이 대부분이다. 
환자에게 질문하는 것은 대략 정해져 있어서 어렵지 않다. 환자의 성별, 나이와 병원을 찾게 된 주소 등을 상세하게 질문하고 기록하면 된다. 문제는 환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비록 학생이지만 갓 배운 뜨끈뜨끈한 치과 지식을 자랑도 하고 싶고 전문적인 지식을 환자에게 뽐내고 싶기도 하다. 물론 제대로 설명하는 때도 있지만 헛다리를 짚어서 교수님의 설명을 같이 듣고 나서는 숨을 곳을 찾고 싶을 때도 있었다.

우문현답이 필요한 순간
막상 의사에게 원하던 답을 듣지 못하면 원내생인 나에게 집요하게 그 대답을 얻고자 했던 환자도 있었다. 질려버릴 듯할 정도로 끊임없이 무의미한 질문을 반복하는 환자는 그때뿐이 아니라 물론 지금도 있다. 원내생 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그런 질문에 당황하지 않을 뿐이다.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도움이 될 의학적 지식을 전달해주게 되는 그런 질문들은 늘 환영이다. 하지만 의사가 해결해주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원내생 때 새벽 3시쯤이면 앞니가 아파서 깨는 환자를 담당했었다. 잠에서 깨고 난 후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치과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원내생 때 환자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나도 나름대로 책을 찾고 검색도 해봤다. 자기 전에 무엇을 먹는지, 잠자리 드는 시간이 일정한지, 자면서 이를 갈지는 않는지, 어떤 자세로 자는지, 꿈을 자주 꾸는지, 구호흡이 있지는 않은지, 혀를 내밀거나 입술을 깨무는 습관이 있는지 등 수많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이갈이가 약간 있는 것으로 보여 병원에서는 그쪽을 원인으로 치료를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잠자는 시간을 바꾸고 장치를 써봐도 별 소용이 없었고 결국에는 왜 3시쯤에 다시 깨는지 알 수는 없는 채로 원내생이 끝났다. 
의사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원내생 신분으로는 잘 몰라도 환자가 이해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잘 대답하지 못하면 난처해질 수도 있다. 심지어 이미 정답을 알고 확인하고자 질문을 던지는 고약한 환자도 있다. 인터넷에서 구체적인 수치도 외워서 그 수치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별의별 상황을 다 겪다보니 이젠 웬만한 질문에는 잘 대처한다.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읊는 환자에게는 그 수준을 넘어서는 어려운 질문을 역으로 내가 한다. 물론 환자는 모르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내가 친절하지만 어렵게 설명한다. 이런 환자 대부분은 내가 그렇게 설명해도 잘 알아듣는 척한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면 악의적 질문 공세는 수그러든다. 

진단명이 나오면 환자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s syndrome)이란 병이 있다. 실제로 앓는 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심지어 자해해서라도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정신 질환이다. 어린 시절 과보호로 인해 자립 능력이 떨어져 어려운 상황을 자꾸 회피하려는 사람, 어린 시절의 무관심, 상처로 타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 집착하려고 하는 사람 등 극단적인 환경에 놓였던 사람에게 나타난다.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해봐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 환자를 대할 때가 종종 있다. 아프다고 하는 환자의 말은 대부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발견되지 않고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의사는 환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의심에는 자신의 진단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즉 최신 진단 장비와 자신의 임상경험을 총동원해도 알 수 없는 것은 환자가 만들어낸 허상의 병이라는 것이다. 뮌하우젠 증후군도 결국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패턴의 환자 반응을 질병으로 분류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의사에게 진단은 중요하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환자에게 진단명을 내리지 못하면 안 된다. 뇌신경질환의 경계는 그래서 항상 모호한 경우가 많다. 그 테두리 안에 넣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해야 하는 환자가 분명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문을 통한 성장
환자의 질문을 통해서 의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환자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감정 상태가 어떤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병원에 만족하고 있는지, 우리 병원에 어떤 불만이 있는지 환자가 물어보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환자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우리는 노력한다. 그 신뢰가 바탕이 되고 쌓여야 성공적인 병원 경영이 되기 때문이다. 환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것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악의적인 질문이든, 시시콜콜한 질문이든지 여하튼 대답할 수 없거나 답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무시하거나, 다른 질문을 유도하는 질문으로 회피하거나, 어떻게 해서든 환자에게 맞는 답을 찾아서 설명하는 것 중에서 말이다. 우리는 모든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만큼 여유로운 진료환경에서 일하지 않는다. 웬만한 이런 질문들은 무시해 버려야 다른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선택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저 환자가 찾은 마지막 의사가 나라면 어쩌겠는가? 뇌신경질환 환자로 분류해 자신의 영역 밖으로 몰아내기 전에 환자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고 해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해본다면 그 시시콜콜한 질문을 통해서 더 나은 의사로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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