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31)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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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31) 씨앗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1.07.0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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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지난주 KatieL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학교 3학년 아이가 정기 체크업을 왔다. 치아가 아주 고르고 예쁘게 관리를 한 아이였다. 

우리 Hygienist가 Cleaning을 먼저 하고, 내가 체크업을 하니 모두 너무 좋은데 Second Molars 두 개에 작은 Class I Caries가 보인다. 치료하지 않고 지켜보기에는 좀 큰 것 같고, 치료하기에는 너무 작은 것 같아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러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더 자라기 전에 치료를 해 버리자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이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거의 눈물을 흘리며 흥분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닌데 왜 그렇게 실망을 하냐고 물어보니, 생각하지 못한 답을 한다.

“I am going to be a dentist in the future.  It’s has been my dream and I am all dying for it.  I cannot afford myself to have cavities… ”

어렸을 때부터 치과의사가 꿈이었고, 그렇기에 자기는 최고의 치아를 가지고 싶었는데, 썩은 이가 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런 말이었다. 

Hygienist와 나랑은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심이 많으니 좀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You are born with teeth with relatively deep and fine grooves and it’s extremely difficult to reach them with a toothbrush. You can only do so much.  We dentists can help this and this is no more than just little patch job.  You see? Our society needs dentist. Pursue your dream all the way. We can help you” 

원래 네 치아는 충치가 생길 수밖에 없는 컨디션이고, 간단한 치료이니 실망할 필요 없어, 그래서 치과의사가 필요한 거야, 우리가 네 꿈을 응원할게… KatieL은 여름방학마다 우리 오피스에 와서 Volunteer/ Shadowing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20여 년 넘게 한자리에서 치과를 운영하다 보니 기억나는 아이들이 몇 있다. KatieL처럼 치과 의사가 되겠다고 찾아온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 어릴 적부터 환자로 보아왔던 아이들이었다. Angelina와 Helen이라는 아이는 치과의사가 되어 아직 연락을 주고받고 있고, Amy라는 아이는 치과를 꿈꾸다 마지막에 진로를 바꾸어 지금은 내과의사 수련의가 되어 있다. 

Helen은 10살 때부터 보아왔던 아이였고, 그 아버지도 나랑 환자와의 사이를 넘어 개인적으로 가까운 형님 같은 분이었다. Helen은 치과의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고, 앞으로의 꿈도 딱히 정해 진 것이 없었다. 지역행사로 의료봉사를 할 기회에 같이 따라와 며칠 나를 도와준 것을 계기로 진로를 치과로 결정했고, 대학교 졸업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치대학원을 입학했고, 그 꿈을 끝까지 이루어 지금은 뉴욕에서 소아치과 전문의가 되었다. 이제 치과 공부를 시작하는 내 아들의 멘토를 부탁하니 인연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Angelina는 한국에서 갓 이민을 와서 나랑 환자로서의 인연을 맺은 온 가족의 첫 딸이었다.  그 당시 19살이었으니 나랑 같은 나이에 이민을 와서 내가 그 처지를 너무 잘 이해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러기에 진로에 대해서도 나랑 많이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이라 지역 Community College에서 대학공부를 시작해 정식 대학으로 편입, 치대학원 입학까지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성실하게 결과를 만들었다.

치대학원을 지원하면서 오피스로 나를 찾아왔다. 지원서에는 왜 치과를 결정한 지에 대한 개인 에세이를 쓰게 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입학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Angelina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도 되냐고 물어본다. 굳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그 아이가 내가 병원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며 자기 미래를 결정했다고 한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지만, 나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며 내 이야기를 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한다. 뭐라고 대답하기 곤란했지만 내 마음은 그 아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뭉클해졌다. 같이 이야기를 듣던 스태프들도 감동이었다. 

Angelina는 IVY League 치대학원을 합격했고, 지금도 우리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착실한 의사가 되어 있다. 

‘씨앗’이란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에 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매일의 진료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많은 씨앗을 뿌리는 것 같다. 내가 만들어 낸 무수한 잡초 가운데, 뿌듯하게 느낄만한 씨앗을 싹틔우는 경험은 정말로 눈물나게 감사한 일인 것 같다.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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