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41) 인도의 오래된 기억, 더러움으로부터 자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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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편지] (41) 인도의 오래된 기억, 더러움으로부터 자유로움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2.01.30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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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41


제가 인도를 처음 방문한 것은 30년 전 남인도 중심 도시인 첸나이 남쪽에 위치한 마하발리푸람에서 열린 Asia Community Health Action Network(ACHAN)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0년 전 인도의 첫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국제공항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허름한 시설들, 공항 주변에서 가족단위로 노숙하고 있는 빈민들, 소와 우마차, 삼륜 자동차, 릭샤와 인파가 뒤섞여 소음을 내면서 무리지어 움직이고 있었던 아침 풍경은 너무도 생경하였습니다. 회의 장소인 마하발리푸람은 고대 힌두유적이 있는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적지이자 벵골만의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한 휴양지입니다. 도착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하려고 해변에 나갔는데 바다를 보면서 무리지어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명상의 나라 인도인지라 사람들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명상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변 모래사장에 있는 똥 무더기들을 보는 순간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인도의사에게 아름다운 해변을 마을 공동화장실로 사용하는 것이 말이 되냐? 보건사업보다도 우선 화장실부터 만들라고 하니까 인도의사가 하는 말이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곳에 화장실을 만들면 오히려 파리, 모기가 꾀는 오염원을 만들어서 더 문제를 만든다는 답변이었습니다. 화장실을 만들기보다는 바닷물에 씻겨 나가도록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가 문제냐는 표정입니다. 서양 위생학 개념에 익숙한 저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충격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최선의 방법은 아니더라도 인도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혜롭고 자연친화적인 방법입니다.

똥, 오줌, 가래침 등 우리 분비물은 몸 안에 있을 때는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몸 밖으로 나와서 눈으로 보는 순간 더럽다고 생각합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길에 밤에 묘지 근처에서 갈증이 나서 맛있게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구더기가 있는 해골바가지 물이라는 것을 알고 구역질을 하다가 깨달음을 크게 얻고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본래 불교에서는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류시화 시인의 인도여행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동국대 불교학 교수가 인도에 안식년을 가서 하인을 고용하였는데 하인이 걸레와 행주를 구분하지 않고 걸레로 식탁을 닦아서 야단하니 하인이 하는 말이 불교에서는 본시 더럽고 깨끗하다는 것이 없다고 가르치는데 걸레가 행주보다 더럽다는 것을 설명해 보라고 대들었다고 합니다. 인도인의 더럽고 깨끗함에 대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문화도 언어와 마찬가지입니다. 인류학자이자 구조주의 철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문화는 우열이 없고 단지 차이만 존재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각 문화마다 고유의 구조가 있기 때문에 삶과 환경의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문화의 최고의 정수는 종교입니다. 인류의 주요 문화권 문화라는 칼집 속에는 종교라는 칼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종교에도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랜 전통이 있는 주요 종교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타 종교를 이해하고자 할 때는 그 종교가 탄생하게 된 환경과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인도에서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모든 문화에는 우열은 없고 단지 차이만 존재한다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언급한 인류학의 명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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