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42) 너무 가난해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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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편지] (42) 너무 가난해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2.03.0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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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42

인도의 빈곤 문제를 다른 영화 중에 뭄바이를 배경으로 한 ‘Slum-dog Millionaire’와 콜카타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City of Joy’가 있습니다. 영화 ‘Slumdog Millionaire’에서는 앵벌이 두목이 슬럼지역의 어린이를 유인하여 약품을 이용하여 장님을 만들거나 다리를 부러뜨려 불구자로 만들어서 구걸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City of Joy’에서는 가난한 릭사꾼이 딸의 혼수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지만 고리 때문에 빚만 늘어납니다. 돈을 못 갚자 고리대금업자가 릭사꾼 딸의 입을 칼로 찢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보듯이 인도의 가난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과 차원이 다릅니다. 현실적으로 심각한 가난의 고통 속에서 가난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역설이기도 합니다. 사실은 체념이거나 달리 표현하면 달관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또한 너무 극심한 가난이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가난은 가난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도인들은 가난의 원인을 자신이 전생에 지은 나쁜 業 Karma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세에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죽기 전에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면 전생의 업이 씻기고 내세에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도인들에게 빈곤 문제는 사회의 불평등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업으로 인한 自業自得과 因果應報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특히 카스트 제도는 빈곤 문제의 핵심 원인입니다. 길희성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카스트 제도는 원래 직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된 제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직업의 안정성을 위해 시작된 제도가 종교적인 교리로 변질되어 인간 차별이라는 사회 정치적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특히 네 개의 카스트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달리트라고 불리는 최하층 불가촉천민은 기본적인 인권 보호는 고사하고 동물 수준의 대우를 받습니다.

인도 도시들의 로터리나 교차로에 많이 서있는 동상은 간디나 네루 동상이 아닌 불가촉천민의 아버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의 동상입니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서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고 영국 런던정경대학에서 박사를 받아 변호사로서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과 인권운동에 참가합니다. 독립 후에 건국헌법 제정을 주도하고 인도 초대 법무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카스트제도와 같은 신분 제도 철폐를 놓고 간디와 갈등을 벌입니다.
 

암베드카르는 완전한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했으나 간디는 힌두교도 눈치를 보느라 반대합니다. 간디와 힌두교에 실망한 암베드카르는 지지자들과 함께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을 선언하고 불교도가 됩니다.

불가촉천민은 학교에 갈 수 없고 따라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암베드카르 역시 학교에 갈 수가 없었으나 한 선생님의 배려로 교실 밖에서 책상 없이 창문을 통하여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인도인 최초로 미국과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인도의 극심한 가난을 보면서 신영복 교수가 인용하였던 철학자 미쉘 푸코의 이론이 생각납니다. 푸코에 의하면 감옥을 만든 이유는 죄수에게 징벌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감옥 밖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정치적인 기제라는 이론입니다. 푸코는 감옥 안이나 바깥이나 감시를 받으면 똑같은 감옥이라는 주장입니다. 인도에서 지독한 가난을 방치하는 것은 빈민들에게 자신은 가난하지 않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인도에서 느낀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움은 불편한 자유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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