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치과의사] (3) 주택 겸 치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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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치과의사] (3) 주택 겸 치과 이야기
  • 정우승 원장
  • 승인 2022.03.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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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치과의사 정우승

지난 호에 이어서 주택 겸 치과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우연히 우리 치과와 거의 동시에 개원하게 되었던 “121” dental clinic은 3~4개월 전 폐업하고 남편 되시는 분이 병세가 위중해 한국에 치료 요양 차 귀국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루 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길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상호를 INE로 작명한(뜻은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Inspiration and Ethos의 약자) 나의 치과는 25에이커 크기의 Manor park라는 공원과 인접해 있는데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천일의앤’의 주인공 헨리 8세의 사냥터였다고 한다. 그가 말을 타고 완전 시골이었을 집 옆 공원 일대를 어슬렁거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서쪽 6km 남짓 거리에 그의 거주지였던 Hampton court palace가 있는데 연중 내내 관광객들로 들끓는다(Hampton court palace에서 첫번째 왕비 캐서린의 혼령 목격담과 2013년 cctv에 찍힌 중세 수도사 복장을 한 섬찟한 유령 영상도 볼만하다).

얼마 전 동네 펍에서 축구 경기 관전 중 옆 테이블 아저씨 말에 의하면 1900년대 초에는 콜롬비아 레코드 소유의 골프장이었는데 그 사장이 주거지역으로 기증하여 형성된 곳이란다. 공원 내에는 킹스톤시 전 시장이었던 Mr.Shiraz를 기념하는 community hall이 있어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계 주민의 결혼식이 심심찮게 열려 원색의 형형색색 전통 고유 복장 sari를 한 하객들이 바로 집 앞 골목까지 빼곡히 주차를 하고 걸어가곤 한다. 간디의 헌신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파키스탄과 둘로 나뉜 것은 힌두교와 이슬람교 종교 때문인 것은 다 아실 터이다. 이 이민자들은 이제 영국의 한 축을 구성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예시로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아들 런던 시장 사디크 칸이 있다) 카레 음식점은 영국 어디를 가나 피쉬앤칩스처럼 반드시 눈에 띄는 아주 일상적인 토착화된 음식이 됐다. 혹자는 식민지 200년간(1757년~1947년) 착취의 부메랑이라고들 한다.
 

아무튼 개원 공사 중 엑스레이 룸으로 개조할 차고 정리를 하다가 이 집의 최초 주인이었던 독일 출신 마취과의사 Freitag씨의 10여 통의 1940년대 서신을 발견한 적이 있다. 전 직장 동료들로부터의 추천서를 비롯해 1942년 7월 편지에는 세탁 포함 숙식 제공 연 £160 하루 £1.1의 임금으로 당직 의사로 채용됐다는 내용, 1944년 3월 7일자 통지문에는 보건부 등급 심사 위원회에서 마취 전문의로의 승급 결정이 결렬됐다는 내용도 있다. 이 편지를 받아들고 씁쓸해 했을 그의 표정이 떠올랐다. 비록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정원 가드닝에 애정이 아주 컸던 분인지 마당 뒤쪽엔 큰 포도나무로 꽉 찬 비닐 하우스도 있고 벚꽃나무를 비롯한 20여 가지 관목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웃집 마당으로 꽃잎이 너무 떨어져 나이 많은 노부부로서는 청소하기 힘들다는 콤플레인 덕에 안타깝게도 작년에 두 다람쥐의 휴식처이자 봄의 전령사였던 이 아름다운 나무를 베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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