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의료 상인(醫療 商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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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의료 상인(醫療 商人)
  • 김동석 춘천예치과 원장
  • 승인 2023.01.0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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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오늘도 의료 쇼핑을 다니는 환자를 맞았다. 다른 치과 몇 군데에서 이런저런 치료 상담을 하고 견적까지 뽑고 마지막으로 들렀다고 했다. 난 왜 첫 번째로 선택되지 못했을까? 환자에게 물었다. “아니 왜 여기 첫 번째로 오지 않으시고 마지막으로 오셨어요? 섭섭하네.” 환자의 말로는 “여기저기 다녀보니 다 비슷한 거 같고, 비싼 병원은 뭐가 좀 다르나 해서 와봤지.”라고 했다.

우리 병원 임플란트 수가는 여전히 10년 전에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사이 하락한 가격 때문에 엄청 비싼 치과가 되어버렸다. 최근 초저수가 치과에서 3~4개 심는 비용으로 우리 치과에서는 1개밖에 심지 못하니 그럴 만도 했다.

치료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치료가 필요한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의료 쇼핑을 다니는 환자라고 해서 무조건 가격 비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 환자는 값이 아니라 치료의 ‘가치’를 설명해주었을 때 그 가치를 이해하고 치료에 동의했다.

문제는 이런 환자는 아주 가끔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환자는 치료의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고 단순히 가격만 비교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다. 의료 수가 체계가 무너진 나라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의 고뇌다.

최근 임플란트 등 비보험 진료에 대한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개원가가 초비상이다. 환자들이 가치가 아닌 가격 비교만으로 치과를 선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당장 이를 해 넣어야 하는데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싼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초저가를 내세우는 것도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는 있다.

 

보장성 확대와 의료 쇼핑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1년 외래진료 횟수 상위 10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여성 A씨는 총 24곳의 의료기관을 찾아 외래진료를 2050회나 받았다고 한다. A씨에게 건보 부담금 2690만 원이 지출됐다. 나머지도 1년에 2000회 가까운 진료를 받으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건보공단이 부담하게 했다.

의료 쇼핑이 가능한 이유는 환자에게 주어지는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 의료 쇼핑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10년 넘게 공부하고 20년 동안 진료를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토대로 진단하고 설명해도 환자가 치료에 동의하지 않으면 기본진료비 몇 천 원 받는 것이 전부다.

의사가 맘에 안 들거나 직원이 불친절하거나 심지어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가차 없이 다른 병원을 찾는다. 발품을 파는 것이 귀찮을 뿐 돈이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진료량을 늘려야 수익도 커지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 민간 실손의료보험의 과도한 보장성 등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민주주의 사회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통제된 단일화된 보험제도는 불균형과 불평등의 근원이기도 하다. 환자의 선택권 보장을 높이고 의료비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대부분 폐지된 선택진료제도도 어찌 보면 합리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진료 경력 1년도 안 된 치과의사와 경력 30년의 교수가 동일한 진료 수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나라에서 이렇게 정해 놓은 것에 이미 환자들은 익숙해진 모양이다.

아무리 임플란트 시술의 경험이 많다는 것, 사후관리에 대한 가치 등을 설명해도 왜 똑같은 제품을 심는데 가격이 차이가 나냐고 따진다. 경험이 많은 교수 출신 치과의사도 초저가 수가에 동참하고 있다고 하니 사실 환자의 이런 반격에 할 말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의사도 결국 장사꾼인가?

최근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취합해서 검색·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과 개원을 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본 및 인력을 충원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도움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은 진료비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모든 의사가 기여했다.

급여진료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의료환경에서 비급여 항목은 병원의 사활이 걸려 있다. 비급여 항목이 많은 치과는 더욱 그렇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에서 의사의 지식과 기술, 경험에 대한 차이를 반영하지 않은 급여진료의 문제점을 비급여 진료 항목에서 보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급여 진료비 공개 검색이 국민의 알 권리와 의료기관 선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급여 진료비를 책정하고 유지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볼 때 그 어떤 ‘가치’의 비교도 없이 단순한 ‘가격’의 비교만으로 그 취지가 실현될 수 있을까?

국가는 의사를 장사꾼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초저가 임플란트로 과다 경쟁에 휘말린 것을 봐서는 나라에서 굳이 비급여 진료에 관여하지 않아도 환자들은 자유롭게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선택하고 있다. 일을 자꾸 만들고 싶은 공무원의 습관 같은 것이 아니라면 그저 놔두면 그만이다. 그래도 관리를 해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료 장사꾼의 이미지를 자꾸만 심어주는 것이 바로 의사 자신들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왈 방어리이행이면 다원이니라

이제 가격 경쟁에 휘말린 우리는 스스로 장사꾼이라고 자백한 꼴이 되고 있다. 하지만 장사꾼, 상인에게도 상도(商道)라는 것이 있다. 비급여 진료에 대한 초저가 마케팅을 일삼는 의사들에게 의사로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장사꾼이 가져야 할 상도 정도는 얘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子曰 放於利而行이면 多怨이니라(이익에 근거하여 행하면 원망이 많다)” 상도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공자의 말이다. 일반 상인들도 그럴진대 사람을 치료하고 낫게 해주는 의료기관이 이익을 좇아서 행동하면 그 원망스러움은 더할 것이다. 

그 원망은 물건을 산 사람뿐만 아니라 같은 업을 하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서 들을 수 있다. 원망과 원한을 사게 되는 것은 바로 누군가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덤핑 치과의 야반도주로 많은 환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소식은 꽤 자주 들린다. 가격을 더 쉽게 비교할 수 있을수록 그 의사의 ‘가치’를 판단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가격 비교라면 언제든 찬성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원망을 줄일 수 있는 진정한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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