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는 브로네막 교수 넘을 때 됐다
상태바
[인터뷰] 이제는 브로네막 교수 넘을 때 됐다
  • 덴포라인 취재팀
  • 승인 2012.03.29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정과 집념으로 한국 Implant 불모지 일군 김영수 서울대 명예교수

“이제는 브로네막 교수 넘을 때 됐다”

열정과 집념으로 한국 Implant 불모지 일군 김영수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2010년 6월 한국 치의학계에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1979년부터 implant 시술에 전념해 온 김영수 서울대 치과대학 명예교수의 implant 시술 5,000례 달성 기념행사였다. 올해로 75세가 된 김영수 명예교수는 아직도 일주일에 세 번 아내인 구옥경치과의원장과 함께 병원에 출근하는 현역 치과의사다. Implant 불모지였던 한국에 처음 implant 시술을 도입한 1세대로 지난 2010년 대기록을 세운 김 교수는 매일 여전히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Implant 역사의 산증인인 김 교수를 덴포라인이 만났다.

덴 : 사실 현역에 계시기엔 많은 나이다. 그런데도 젊은 의사들 못지않게 시술과 연구 개발을 병행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 : 임상가로서 현장에서 환자를 보는 것이 가장 큰 힘이다. 외국 학회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에는 그리스 EAO에 갔다가 골이식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최근 여기에 대해 연구 중이다.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보고 듣는 가운데 영감을 받는 부분이 있다.

덴 : 당시 implant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80년대에 국내에 이를 도입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김 : 70년대 말 80년대 초 스웨덴 Albreksson 교수와 Branemark 교수가 치과 implant를 만들었다. 당시 미국 쪽에서는 이들 Implant에 대해 성공률도 조작됐으며 실험 자체도 엉터리라는 식의 폄하와 비난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ranemark팀은 최고의 임상 연구가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과학적인 데이터를 충실히 갖추는 동시에 최고의 디자인 마케팅 전략가들을 고용해 제품 광고를 함으로써 Implant의 유용성을 증명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Implant를 접하며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Branemark 교수를 만나 implant에 관해 전수받았고, 한국에 처음 implant 시술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덴 :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지 않았나?
김 : Implant를 한국에 가져오면서 한 생각은 ‘한국에서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재료를 구입해서 실제 제작에 착수했는데 초창기에는 많은 실패를 겪었다. Branemark 교수의 실험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며 implant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인지 확인하려 했다. 처음엔 내가 했던 실험의 성공률도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가지 조건을 바꾸며 실험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성공률이 상당히 올라갔고, 기술적 부분은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러나 그 제품들은 외국 제품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었고, Branemark 교수 등 implant를 연구하며 만난 외국인 교수들과의 관계나 내 명예를 고려하면 상용화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데 만족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덴 : 최근 많은 회사에서 Implant를 개발하고 있고, 국산 제품의 수준도 상당히 올라갔다.
김 : 그렇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도 하나의 스탠다드로 생각하는 것은 Branemark 시스템이다. 최초로 개발된 제품이라는 의의도 있고, 실제 Implant 개발을 위해 Branemark 교수 팀이 했던 연구가 상당히 고차원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처음 하버드에서 만났을 때 상당히 감명받았다. 그 당시 그렇게 심도깊은 연구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Albreksson 교수의 연구실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연구 논문을 보게 됐고, 그 개발 과정을 지켜보면서 Branemark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 것이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 제품을 미국 제품이 따라가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고 미국이 방대한 자본을 투자하면서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산 제품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와 벤츠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 제품에 비해 디테일한 부분에서 조금씩 떨어진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가격대비 괜찮은 제품들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고 본다. Branemark implant의 가격이 폭등한 것도 있고, 국산 제품을 사용한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 더 이상 한 가지 제품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덴 : 처음 교수님이 국산 Implant 개발에 대해 연구하던 시절에 비하면 굉장한 발전이라고 느껴지실 텐데.
김 : 내가 개발을 시작할 때는 어떤 기업도 Implant 연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기업의 뒷받침 없이는 기술적·경제적인 문제로 연구를 계속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생겼고, 이제는 Branemark 같이 특허를 가진 외국 기업들의 기술력을 넘어서는 게 문제다.

덴 : 지금은 Implant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다 implant를 시술한다. 교수님이 보시기에 작금의 상태를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김 : Albreksson 교수가 지난 10월 EAO에서 좋은 implant를 위한 네 가지 요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나는 임의대로 그것을 4G라고 부르고 있다. 첫 번째는 Good implant다. 좋은 제품을 써야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이건 당연한 얘기다. 두 번째는 Good surgeon이다. 시술하는 사람이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Good prosthodontist, 즉 보철물은 잘 만들어야 하며, 마지막 네 번째는 Good patient다. 즉, 시술이 성공하기 좋은 요건을 갖춘 환자다. Albreksson이 이 4가지를 얘기하며 Implant 대중화에 불행한 사례로 지적한 것이 있다. 바로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은 의사가 Implant를 시술하는 것’이다. 냉정하게 얘기해야 한다. 한국 제품이나 기술은 분명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Implant를 아무 치과의사나 다 하고,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다면 제대로 훈련받은 의사만 Implant를 시술하는 외국에 비해 수준이 더 낫다고 할 수가 없다.

덴 : 그것이 한국 Implant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보시는지?
김 : 한국 Implant계는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는 경우는 드물다. 외국의 기법을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술식이나 기술을 만들어 활용해야 하는데 아직 한국은 그런 점에 있어 많이 부족하다.

덴 : 향후 한국 Implant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 : 내가 확답할 수는 없다. 발전 단계가 올라가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사실상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면 시술 시간을 단축시키는 제품일 것이다. 좀 더 빨리 심을 수 있고, 치유 속도가 보다 빠른 Implant, 즉 생체 안정성이 높은 implant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여러 국산 제품들도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려 하고 있는데,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이 있다. 첫째는 생존률이 높아야 한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제품을 꼽는다면 Luna/Sola implant 시스템이다. 현재까지 직접 식립한 모든 Luna/Sola가 탈락하거나 제거한 사례가 아직 단 한 건도 없이 우수한 골유착 결과를 보이고 있으며, 식립감도 좋고 표면처리나 디자인, 호환성도 만족스럽다.
두 번째는 무엇보다 심었을 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철 장착 후에는 Screw loosening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데 Luna/Sola에서는 지금껏 나사 풀림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나사 풀림이나 기타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디자인이다. 물론 이 부분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Long term follow up을 해야겠지만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 번째는 아무래도 가격적인 부분이다. 낱개 구매 시에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개원의 입장에서 각자 따져 봐야 한다.

덴 : 교수님이 최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는 분야도 Implant 쪽인지?
김 : Implant 자체에 대한 관심은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언급했듯이 좋은 회사들이 많이 생겨났고 외형이나 표면 처리 부분, 디자인에 있어서도 상당히 발전했다. 이제 그런 것은 나 개인보다 회사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요즘 관심을 갖는 쪽은 보철과 관련된 다른 기구들에 관한 것이다.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술에서 적절한 기구는 상당히 도움이 된다. 이런 상품을 개발하는 데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미국 유학을 갔던 40여년 전, 대학 도서관에서 1930년대 저널을 쭉 훑어본 적이 있다. 『AD저널』, 『덴탈 코스모스』 같은 책들인데 놀랍게도 요즘 ‘새롭게 개발했다’고 떠드는 것들이 이 저널에 이미 실려 있는 경우가 많다. 내게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기술에 있어 원리가 되는 기본적인 사항들 중 완전히 새롭게 나타난 것은 거의 없다. 수많은 실험과 기술의 발전을 더해 보다 편리한 방향으로 개선돼 나갈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생각할 수 있다는 부분을 늘 염두에 두고 많은 조사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젊은 연구자들 중 이런 점을 잊고 자만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경계해야 할 것이다.

덴 : 최근 치과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 : 박리다매 Implant 시술로 이익을 얻는 네트워크 치과 같은 것이 사실 큰 문제가 된다. 이런 것은 없어져야 한다. Implant가 저렴한 시술은 아니고, 때문에 환자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잠시 이벤트성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정도의 방침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네트워크 치과의 박리다매식 운영은 치과계 전체를 갉아먹는 것이다. 내가 처음 Implant 시술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목표 중 하나는 이 시술로 많은 돈을 벌어 사회 환원 등 좋은 일에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5천 회 이상의 시술을 하면서도 처음 생각했던 만큼 돈을 벌지는 못했다. 내가 현장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치과를 운영하면서 Implant로 장사를 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Implant 시술이라는 것이 상당히 오랜 기간 유지되는 것이기도 하고, 의사들이 실제로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의 수는 정해져 있다. 내가 아침 10시부터 환자를 보는데 일반적인 수술에 보통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치과의 특성상 이런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치과를 무조건 대형화시키고 환자를 싸게 유치하려는 경쟁을 벌이게 되면 주변 치과를 다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의사들은 먹고 살기 위해 치과의사로서의 자존심을 다 버리고 장사꾼이 된 사람들이다.

덴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향후 계획에 대해 들려주신다면.
김 :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이제 체력이라든가 많은 상황이 받쳐 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예전에는 주말까지도 환자를 보면서 제자들을 불러 시술 과정을 보여주는 일을 많이 했다. 내 치료를 원하는 환자가 많기도 했고, 나 자신도 더 많은 케이스를 경험한다는 데 대한 욕심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부분은 많이 내려놨다. 사실 취미랄 게 그리 없는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늦게 배운 바둑에 빠져서 바둑 공부를 한다. 바둑을 두며 머리를 식히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쭉 해왔던 논문 정리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걸 연구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재는 시술에 필요한 아이디어 상품을 만드는 일과 골이식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남들이 이미 한 것이나 하고 있는 것보다는 뭔가 독창적인 것을 계속 하고 싶다.

새로운 것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다는 김 교수의 눈은 젊은 의사들 못지않은 형형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열정과 집념 하나로 외길을 걸어온 김 교수를 다시 만난 곳은 국내의 어느 CAD/CAM 학회장에서였다. 어느덧 종심(從心)의 나이를 지난 우리의 멘토는 꼿꼿하고 당당하게 험한 가시덤불을 헤치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