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 40년 쌓은 내공, 이젠 세계시장 호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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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탐방] 40년 쌓은 내공, 이젠 세계시장 호령한다!
  • 류재청 기자
  • 승인 2016.01.04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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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용 핸드피스 전문기업 ㈜세신정밀

치과용 핸드피스 전문 기업 ㈜세신정밀. 76년 회사를 설립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불혹’에 해당하는 나이다. 1970년대 아무 기술도 없던 가난한 대한민국에 기술자립을 꿈꾸며 지난 40년을 오직 핸드피스에만 매달려 왔다. 지금은 세계 120개국에 수출될 만큼 치과용 핸드피스 분야에서는 일본,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시장을 호령한다. 창업주 이익재 회장을 만나 그의 ‘핸드피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 | 류재청 기자 denfoline@denfoline.co.kr

 

 

“회사를 세운 게 76년이니까 벌써 40년이 됐어요. 70년대만 해도 국산 핸드피스는 아예 없었고 일부 외산 장비들이 들어 와 있었지만 지금 제품과 비교해 보면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죠. 하다못해 ‘모터’라는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발을 굴러 동력을 만들고 벨트로 동력을 전달해서 핸드피스를 구동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탈곡기나 재봉틀 같은 원리였지요.”

㈜세신정밀 이익재 회장. 창업 초기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70년대 핸드피스와 인연을 맺은 이후 청춘과 인생을 고스란히 핸드피스에 바쳤고 핸드피스의 역사와 함께 그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 회장이 세신정밀을 세운 것은 76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20대 후반 무렵이었다. 일찍이 기계분야, 특히 원동기 장치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 이익재는 모든 게 불모지였던 그 시절, 그렇게 핸드피스와 인연을 맺었다.

 

“얼마 뒤 ‘모터’라는 게 나왔는데, 이 조차도 지금처럼 장치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발을 굴러 얻던 동력을 모터가 대신해 주는 식이었어요. 한 쪽에서 모터가 돌아가고 벨트를 통해 전달된 동력으로 핸드피스를 구동하는 식이었습니다. 외산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처럼 장치 안에 모터가 들어 간 것은 그로부터도 몇 년 뒤였지요.”

외산제품 고쳐주며 ‘세신’ 이름 알려
모터가 직접 구동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제품이 나온 것은 70년대 중후반이었다. 일본제품, 독일제품을 중심으로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일체형 제품들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 제품과 비교해 보면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탈곡기나 재봉틀 수준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당시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외산 제품들은 청년 이익제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뜯어보고 또 뜯어보고 연구와 연구를 거듭하기를 수 백 번. 여러 차례 일본을 드나들며 사정하다시피 기술을 동냥하고 부품을 사 모았다. 청계천 일대를 제집 드나들듯 부품을 찾아 헤매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79년, 투박하고 어설프지만 그렇게 그의 첫 작품이 탄생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핸드피스가 탄생한 순간이다.

개발자에서 제작자, 그리고 다시 영업사원으로 변신했다. 자신이 만든 첫 제품을 들고 기공소며, 치과며, 재료상이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그러나 영업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일본이나 독일 제품이 이미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낮선 국산 제품에 마음을 열 것이란 기대는 애초 무리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현실에 좌절도 많았지만 그러나, 젊은 이익재는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치과대학이나 치기공학교를 중심으로 영업을 했었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장비들이 한쪽 구석에 쌓인 채 사용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더라고요. AS 개념도 희박한데다 외국 제품이다 보니 고장이 나면 그냥 방치되다시피 했던 거예요. 고쳐줄 사람도 없거니와 외국으로 보내 수리 해 오기까지도 시간도 많이 걸려 제대로 사용을 못하고 있던 거죠.”

그렇게 외산 제품을 대신 고쳐주는 것으로 ‘세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세신 제품을 권유하며 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다. 외산 제품이 할 수 없는 AS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는 세신제품, 국산제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경쟁력을 부각시키면 조금씩 시장의 문을 두드려 나갔다.

운명을 가른, 시카고 덴탈전시회
기회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찾아왔다. 소위 보따리상으로 불리던 일부 교포들이 세신의 핸드피스를 미국 시장에 한 두 개씩 가지고 나가면서 미국에서 먼저 관심을 보여 왔다. 이 관심을 계기로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1980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덴탈 전시회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는 중요한 운명의 전기를 맞게 된다.

손짓 발짓 섞인 서툰 영어였지만 젊은 한국 청년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이 전시회를 통해 이 회장은 향후, 세신이 수출 주도형 기업으로 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은인을 만나게 된다. 이 전시회를 통해 ‘독점 공급’이란 조건으로 해외 시장의 판로가 개척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았다. 당시 이 딜러는 한국까지 직접 날아와 세신의 공장과 물건을 직접 확인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100개, 200개로 시작한 미국으로부터의 주문은 점차 늘었고 그렇게 ㈜세신정밀의 수출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난 2015년.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수출 도화선은 이제 세계 120개국에 이를 만큼 세계 각지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다.
투박하고 어설펐던 제품, 외국 제품을 흉내 낸 정도에 그쳤던 제품이었지만 이젠 일본, 독일 제품과 당당히 경쟁하며 세계 시장을 호령한다.
76년, 농기계 공장에서 시작된 청년 이익재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일본, 독일과 경쟁하는 세계적인 기업
2015년 총 매출은 3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신정밀은 전체 매출의 90% 정도는 해외에서 일어난다. 2014년 기준, 226억 원의 매출 중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6억 원에 불과한 반면 수출은 240억원에 이른다. 수출 선은 중국, 미국, 유럽 순으로 형성으로 돼 있다. 2000년 ‘1백만 불 수출탑’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2천만 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근간이 되었던 마이크로 모터 핸드피스에서부터 치과 시술용 핸드피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수 많은 역경을 극복해 온 결과다. 지금은 특허만 17건에 이르고 실용신안 5건, 디자인 25건, 의장상표 14건 등 풍부한 원천기술과 다양한 지적재산을 축적하고 있다.

치과 임플란트 시술용 감속엔진 및 수술용 핸드피스를 중심으로는 ‘STRONG’과 ‘TRAUS’란 자체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누빈다.
내수는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서의 점유율은 두말할 것도 없이 1위 기업이다. 덴탈 분야에서의 인지도는 물론이거니와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 지역에서는 유명하고 유망한 중견 강소(强小)기업으로 성장했다.

“비결이랄 게 뭐 있나요. 40년 간, 내가 만든 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외국 제품에 뒤지고 싶은 않은 오기도 있었고요. 굳이 꼽는다면 신뢰구축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자랑 하나 꼽는다면 아직도 20~30년 오랫동안 거래해 오고 있는 바이어들이 적지 않다는 건데, 제겐 상징적인 재산인거죠”

40년 성장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소박하고 겸손한 대답을 내놨다. 제품의 특장점을 묻는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그의 삶과 노력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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