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SOO 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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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SOO EUN
  • 김영명
  • 승인 2016.04.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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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에 대한 전언

 

대지 위 길게 내려앉은 주택의 이름은 ‘산수언(山水言)’이라 지어졌다. 그 이름처럼 자연의 요소를 집 안 곳곳에 담았다.

자료제공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하얀 자작나무가 심어진, 가족만을 위한 비밀스러운 정원. 산과 물이 하나된 산수언의 외관.
한 통의 전화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잡지에서 그대들의 작품을 보게 되었고 팬이 되었다며 좋은 작품 잘 보셨단다. 작은 인사치레였겠지만 고마운 마음이 샘솟았다.
두어 번의 만남 후 우리끼리 대지와 건축주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이 대지에 만들어질 공간의 이름을 ‘산수언’이라 결정했다. 그러니까 이제 막 설계가 시작되어 구체적인 형태나 분위기에 대한 어떠한 그림도 없을 때, 대지와 건축주의 분위기만을 가지고 이름을 결정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이 프로젝트는 먼저 결정된 산수언이라는 이름을 콘셉트로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산수언이라는 단어가 디자인적으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맥락은 이러하다. 자연을 감싸 안으려 하지도, 담아내려 하지도 않은 자연을 닮은 본질적인 공간, 말 그대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건물과 주변 환경 사이에 주고받는 사소한 상호작용이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느껴질 수 있도록 ‘땅 읽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대지를 기준으로 뒤로는 좁은 진입로와 낮은 언덕이 있고 앞으로는 시원하게 열린 벽계천(檗溪川)이 흐르고 있다. 일반적인 배치로는 건물이 맞은편의 좋은 풍광을 다 가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건물 맞은편의 풍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Floor level을 4m 내려 앉혔다. 이는 이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초입부터 좋은 풍광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 풍광에 설레길 바라는 배려이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답답하고 좁은 길이 아닌 경치를 조망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고 싶었던 이유이다. 또한 건축주가 계곡 가까이 머무르며 배산임수의 공간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산수언은 건물과 주변 환경 사이에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풍성하도록 설계되었다. 좁은 도로를 통해 마주하는 이 공간의 첫 얼굴은 ‘바위’이다. 개인적인 사유공간을 넓히기 위해 대지경계라인에 경계심이 가득한 담을 세우기보다는, 크고 작은 바위를 밀밀소소(密密疎疎)하게 배치하여 쉼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자 했다.
이 공간은 휴식의 공간, 여유의 공간이다. 서울 여느 주택들처럼 기세등등한 집의 형태가 아니라 소박하고 담백한 여유를 지닌 건축주의 마음을 닮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산수언은 첫 얼굴부터 집이 가진 형태적인 의미보다는 자연과 자연이라는 큰 공간 사이에 놓인 쉼을 위한 하나의 공간일 뿐이게 된다.

 

주차장을 따라 내려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계곡과 맞은편의 산등성이를 바라볼 수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고 거실에 들어서면 집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의 기능적인 측면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집으로 인해 건축주가 온전하게 개인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정원을 계획하였는데, 덕분에 이 공간 속에서 시각적으로 아주 훌륭한 장치가 만들어진 셈이다.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이 공간은 형태적인 큰 의미보다는 쉼을 위한 하나의 공간일 뿐이기 때문에 형태, 질감, 색깔, 소리, 빛 등의 모든 것들이 자연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은 ‘정제된 분위기’를 가지도록 설계되었다. 비록 콘크리트라는 인공적인 소재의 건축물이지만 흙을 가장 닮은 질감으로 조작·창조되었고 이는 새로 지어졌지만 오래도록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존재가 된다. 빛 또한 마찬가지다. 넓은 창을 통해 낮 동안에는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빛이 존재하지만 밤에는 어쩔 수 없이 인공적인 빛을 사용해야 하니 이는 정말 최소한의 빛이어야 했다.

 

이처럼 이 공간에 기능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모든 사물들을 덜어내고 덜어내면서 자연에 가장 가까운 공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산수언을 계획하고 만들어 가면서 건축주에게 안식처가 되는 요란하지 않은 장소가 되길 끊임없이 되뇌었다. 마지막으로 건축주에게 열쇠가 전달되던 그 순간, 건축주도 우리의 마음을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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