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멸균 실패’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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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멸균 실패’가 주는 교훈
  • 김채영(㈜샤홀딩스 경영지원과장)
  • 승인 2016.12.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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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샤홀딩스 경영지원과장)

 

▲ 김채영(㈜샤홀딩스 경영지원과장)

그동안 우리는 단순히 ‘소독=멸균’이라고 믿어왔다.(소독과 멸균은 다름)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오토클레이브에 들어갔다 나온 기구들은 멸균 지시 테이프의 색깔만 바뀌었다면 ‘모두 멸균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감염관리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면서 만난 ‘멸균 실패’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우리 병원은 그 동안 믿어왔던 ‘멸균의 모든 것’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별 고민 없이 구매해 사용했던 세제, 기구 포장지, 세척법, 멸균기, 병원의 관리사님들이 도맡아 주시던 중앙공급실 프로세스 하나하나까지 살펴보기로 했다. JCI 인증병원을 방문하고 책과 논문을 보고 우리 병원의 프로세스와 비교 분석해 보기도 했다. 스탭 선생님들과 대표 원장님들로 이루어진 ‘감염관리위원회’를 만들고 자체 교육과 세미나도 진행했다. 하나씩 하나씩 발 빠르게 바꿔가고 교정해 나갔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렇게 바뀌었다. 우선, 환자에 대한 메디컬히스토리를 철저히 진행했다. 보통, 초진 때만 물었던 환자 히스토리를 6개월 이상의 기간을 두고 재방문했다면 꼭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개인방호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이뤄지게 되었다. 의료인의 손 세척은 물론 환자들이 진료실을 출입할 때에도 꼭 손소독제를 이용하도록 도와드린다. 특히, 임플란트 수술 환자의 경우, 1회용 가운과 헤드캡을 의무적으로 장착케 하고, 병원 출입문과 수술실 출입문에도 ‘스티키 매트’를 놓아두어 혹시 모를 오염원 유입을 세세히 차단했다. 술자의 손이 가장 많이 닿는 체어 버튼, 라이트 손잡이, 전자차트의 키보드, 문의 손잡이 등에 블루비닐을 붙여 교차 감염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세 번째는, 기구의 소독과 멸균 시스템의 재정비다. 무심코 했던 행동들(예를 들면, 글러브를 끼고 문을 열거나, 사용한 기구를 건조한 상태로 방치해 두는 일 등)이 바뀌었다. 체어를 떠나는 순간 글러브는 손에서 사라졌고, 사용한 기구는 뚜껑이 있는 보관함을 거쳐 재빨리 중앙공급실로 옮겨졌다. 중앙공급실에서는 폐기물의 분류부터 인증 받은 세제와 소독제를 사용해 침지, 세척, 멸균, 건조, 보관 등의 과정을 기준에 맞게 진행한다. 멸균일지를 쓰고, 멸균물의 멸균 지시 상태를 면밀히 확인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멸균을 마치고 나온 멸균물의 일부에서 CI(화학적 표시자)가 ‘멸균 실패’로 나왔다. 실패 이유는 ‘적재 방법’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치과에서 쓰는 오토클레이브는 증기로 멸균을 하는 형태다. 증기가 통과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재(不在)한 상태에서 차곡차곡 예쁘게 적재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발생한 실패였다. 적재 방법에 따라 증기가 멸균 대상물에 닿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공유했고 그 뒤로는 CI가 ‘멸균 실패’를 나타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근, 한 조사(의료소비자의 특성별 치과 의료기관 선택기준에 관한 분석)에 따르면,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이 통증처지(31.8%), 감염관리(30.5%), 진료비(29.8%), 진료시간(7.9%)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비나 의료인의 이력이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비용이 들것’이란 지레짐작으로 시도조차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환자들 입장에서 병원 선택을 위한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것이란 무지(無智)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선입견을 뒤집어, 우리 병원의 모든 구성원들은 한 곳만을 바라보며 준비를 해왔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그렇게 거창하게 많은 비용이 들지도 않았다. 물론 멸균기를 비롯한 중앙공급실의 장비들은 아직 비싸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고 수요가 많아지면 이 또한 달라질 것이다. 철저한 감염관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 비용과 프로세스가 병원에 부담이 되지 않을 날이 곧 오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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