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행복한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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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행복한 치과의사
  • 윤상혁(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예과 2년)
  • 승인 2017.04.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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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예과 2년)

 

글 | 윤상혁(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예과 2년)

작년 11월, 나는 내 인생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았다.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 의식을 잃어 쓰러졌던 것이다. 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은 병실 천장이었고 시간은 벌써 4일이나 흘러 있었다. 병명은 뇌염 및 간염. 의식을 차린 이후에도 온전히 정신을 되찾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의식 상태로 계속 눈을 뜨고 있다 보니 결막염까지 걸렸다. 위급한 상황까지 갔었다고 주변에서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두렵게, 그리고 아찔하게 다가왔다. 죽음이 이처럼 마음 깊숙이 다가와 피부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한동안 죽음을 가정하는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곤 했다. 일상이 허무했고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너무나 우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생이 끝날 수 있었던 이번 경험은 내 모든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아찔하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행히, 특별한 부작용이나 합병증 없이 점차 건강이 회복되었고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그림자에서도 차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죽음을 생각하기엔 아직 어린 나에게 보다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만약에 내가 죽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고 내가 왜 사는지, 나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고로 이어졌다.

이전의 나는, 노력과 성공에 얽매여 ‘일’ 중심으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요받으며 자라왔고 이 정신은 무의식 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항상 무엇이든 악바리 정신과 태도로 임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고, 살아남기 위해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해야하며, 실패하면 나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치과의사다. 혼자의 노력으로 많은 어려움들을 헤쳐 온 아버지 세대로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 사회에서도 과거의 잣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만으로 유사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노력하면 성공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성공이란 관점에서만 보면 이제 꼭 맞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실업자들이 넘쳐나며 구직은 힘들고 치과업계를 포함한 대다수의 시장이 ‘레드오션’이라며 체념한다. 차이는 있겠지만 무엇을 하든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모두의 입에서 나오는 시대인 것 같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력을 강조하며 성공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현실 아닌가.

‘노력’이라는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자, 낙오자로 느껴지는 환경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이 사회에 만연한 성공과 물질만능 주의적인 정서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상처를 받으며 이럴 때마다 소통하고 공감하며 위로 받기를 원한다. 치유와 소통을 컨셉으로 하는 방송 콘텐츠들을 찾아 시청하고 SNS로 아픔을 토로해 본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지금부터라도 ‘성공’이라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살면 어떨까? 그리고, 아픈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치과의사가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치아 치료를 목적으로 환자들이 내원하더라도 사소한 것에 귀 기울여주고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 치료가 무서워 잔뜩 긴장한 환자에게도 분명 정서적 휴식처가 돼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행복한 인생’이라는 등식이 이제는 성립되지 않는 시대다. 환자를 진정한 마음으로 대하고 소통하는 행복한 치과의사가 되는 꿈을 꾸어본다. 아직은 순수한 학생의 소망이지만 이 마음이 오랫동안 간직되길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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