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4) Michelle & Stepha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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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4) Michelle & Stephanie
  • 박진호 원장
  • 승인 2019.04.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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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4
치과에 오는 환자 중에 나와 연배가 비슷한 아줌마가 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치과에 찾아와 오랫동안 환자로서의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각각 나와의 관계이며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이들에겐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 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동양계이며 비슷하게 생겼다.
 
어느 날, 한 동양계 아주머니가 치료를 받으러 왔다. 차트를 보니 미국 여자 이름(Stephanie R.)인데 얼굴을 보니 완전한 아시아 사람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몇 마디 말을 나누어 보면 출신지는 물론 성향까지 금방 파악이 되는데, 이 분은 참 아리송했다. 중국? 일본? 한국? 태국? 베트남?… 말에는 억양이 전혀 없었고 출신을 알 수 있는 힌트라고는 전무했다. 진료 중에는 그런 것을 묻지 않기 때문에 난 막연한 궁금증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주머니가 먼저 자연스럽게 내게 묻는다. 
“Do you know where I am from?”

자기가 보기에 내가 분명 자신의 출신을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묻지 않으니 먼저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I was adopted very young from Korea”

아뿔싸, 혹시나 했는데 한국 분이었구나. 이 아주머니는 어려서 입양을 와서 미국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의 양부모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학교생활,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정체성 때문에 많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충분한 교육을 받고 양부모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는데, 이렇게 한국 사람과 이야기를 오래 나눈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치과에 자주 오는 것을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며 그렇게 인사를 마쳤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새로운 환자가 왔는데 상황이 비슷했다. 그런데 이 분은 더더욱 출신이 짐작이 되지 않는 분이었다. 필리핀 아니면, 태국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이 분도 아주 어릴 때 미국에 입양 온 한국 분이었다. 이름은 Michelle C.였다.

그런데 이 분의 생활은 앞서 만난 Stephanie와는 많이 달랐다. 양부모가 이 친구를 학대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사춘기 때 집을 나와 여기저기 떠돌다 지금의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도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는데, 그 때문인지 한국 사람일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녀도 같은 말을 했다. 자기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해 본 적이 없다고 말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짠’한 감정이 뭉글뭉글 올라왔다. 마음이 아팠다. 앞서 만난 아주머니의 삶과 너무 극적으로 대비되어 더더욱 가슴이 아팠다. 내가 뭔가 해 주고 싶고 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땅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부모와 함께 성인이 되어 이민을 왔던 나의 생활도 녹록한 편이 아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Michelle이 겪었을 혼란과 번민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었으리라. 마치 여동생의 일인 양 마음이 아프고 만감이 교차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은 동양인 얼굴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지만, 내가 일하는 이곳은 중산층 백인들이 오랫동안 동네를 이루고 산 곳이라 그녀들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년배가 같은 곳에서 이렇게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줄이야.  

지금도 간혹 동양계 아이를 입양해 치과에 데려 오는 미국 가정이 있다. 몇 년 전에는 중국계 여자 아이 두 명을 입양한 미국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그들에게 멘토 노릇을 하고 있다. 그냥 무조건 존경스러울 뿐이다. 한인교회에서 가끔 한국 입양아를 위한 모임 소식이 들려오지만 대개는 단발성 이벤트가 대부분이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입양 온 아이를 보면 마음이 짠하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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