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8) 빈센트 반 고흐와 크뢸러 뮐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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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8) 빈센트 반 고흐와 크뢸러 뮐러 부부
  • 권호근 교수
  • 승인 2019.05.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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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8
1938년에 설립된 크뢸러 뮐러 미술관(Krller-Mller)은 암스테르담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오테를로의 데호헤벨루에(De Hoge Veluwe)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미술관입니다. 대중교통편은 있지만 자동차 없이 가기에는 조금 불편합니다. 하지만 고흐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번 꼭 방문해볼 것을 권합니다.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 다음으로 고흐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자 다수의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미술관에는 100여점의 고흐 작품과 함께 점묘화가인 쇠라의 작품 등 800여 점의 근대 미술 걸작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표현한 <감자먹는 사람>, <카페 테라스>, <자화상> 등 고흐의 유명 작품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앙리 반데 벨데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주변 자연 환경과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미술관입니다. 그리고 국립공원 내 원시림 같은 숲 속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미술 작품뿐 아니라 자연의 정취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오테를로에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입구
네덜란드의 오테를로에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입구

이 미술관은 공간도 아름답지만 설립 스토리 또한 아름답습니다. 크뢸러 뮐러 부인과 그의 남편은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 부부는 아무도 고흐의 작품 가치를 알지 못할 때 작품가치를 알아보고 다수의 고흐 그림을 수집하였다고 합니다. 생전에 돈을 받고 판 그림이 단 한 점밖에 없을 정도로 인기 없던 고흐의 작품이 이제는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이 되었으니 부부가 지녔던 그림에 대한 안목은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뮐러 부부는 어느 정도 그림을 수집하자 그 많은 미술품을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 국가에 기증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탄생 계기입니다.


재테크나 상속의 수단으로 그림을 수집하는 우리나라 부자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뮐러 부부는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통찰한 부부입니다. 저는 이 미술관 설립 스토리를 읽으면서 학생 때 읽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근대 사회학의 시조로 알려진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쓴 이 저서는 서유럽의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가톨릭을 믿는 남유럽 국가보다 왜 더 빠른 시기에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산업혁명을 이룩하였는가에 대해 실증적인 고증을 통해 규명하고 있습니다.

베버는 이러한 발전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개신교도들, 특히 캘빈 주의자들의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소명 의식이란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신이 부여한 사명을 수행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내세보다 현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하며 특히 자신의 직업은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기에 직업에 충실할 것과 열정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부를 정당하게 사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개인적 사치나 쾌락 등을 금하고 검소한 생활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청교도적 윤리와 근면을 통해 축적한 부가 근대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정신적 뿌리와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주장입니다. 물론 막스 베버의 이론은 종교적 편향을 가진 이론이라고 다른 학자들의 비판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설립 스토리를 보면 베버의 주장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뮐러 부부가 캘빈주의 신자였는지는 알 길 없지만, 이 부부의 미술품 기부는 네덜란드의 사회 종교적 전통의 하나의 표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끝없는 탐욕과 무한 경쟁이 판을 치는 21세기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서유럽 초기의 청교도 정신과 자본주의 윤리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한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겨야 하는 인류 공동의 재산이라는 한 사업가 부부의 아름다운 생각과 실천이 자연 속에 있는 아름다운 미술관을 만들었습니다. <2015년 4월 6일>

 
※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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