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11) 미술사에 한 획 그은 ‘마르셀 뒤샹’
상태바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11) 미술사에 한 획 그은 ‘마르셀 뒤샹’
  • 권호근 교수
  • 승인 2019.07.31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퐁피두 센터는 파리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들르는 곳입니다. 항상 유쾌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유리와 철골, 두 재료만 사용한 독특한 외양 덕분에 건축할 당시부터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건물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파리의 복합 문화공간이자 현대미술관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14년 가을 파리 방문 시 퐁피두 센터를 방문했을 때 마침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마르셀뒤샹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남자 소변기를 작품으로 출품한 독특한 작가 이야기는 아실 것입니다. 저도 10년 전 몽피두 센터에 전시된 <샘(fountain)>이란 제목의 남자 소변기를 보았을 때 생경하다 못해 예술이란 이름으로 장난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작품은 현대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뒤샹은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Dadaism의 Dada는 기존 체제를 철저히 부정하고 거부한다는 의미의 용어로 세계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표현주의 작가들(다리파)에 의해 대두된 현대미술 사조입니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역사상 가장 무의미한 전쟁입니다. 승자는 없고 모두 패자가 된 이 전쟁은 유럽을 초토화시켰고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놓은 어이없는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의 합리적 이성과 기독교적 가치를 존중하는 유럽에서 이 같이 무의미한 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하여 유럽의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절망에 빠졌고 기존의 가치관과 전통에 대하여 회의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온 미술사조가 다다이즘입니다.

당시 마르셀 뒤샹은 기존의 예술관에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합니다. 즉미술 작품은 작가가 처음부터 끝가지 직접 제작해야 하는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성품은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는가? 문제제기의 요점은 기성품도 작가가 관점을 가지고 선택하여 특별한 목적으로 전시하면 예술품이 될 수 있고 이러한 선정 과정도 하나의 예술 활동이라고 주장합니다.

뒤샹은 1917년 앙데팡당 전시회에 전시장 근처에 있는 철물점에서 싸구려 소변기를 구입해 작품으로 출품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표현합니다. 전시기획자는 이를 비난하며 작품을 구석으로 치웠습니다. 그러나 뒤샹은 그 후 소변기 외에도 자전거 바퀴, 삽, 와인병 건조대, 옷걸이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퐁피두 센터의 특별전을 알리는 포스터도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린 L.H.O.O.Q.란 작품입니다.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리고 작품이라고 출품한 것도 불경스러운데 작품 제목도 불어로 발음하면 상당히 외설스럽습니다. 불어로 발음하면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라는 뜻입니다.

뒤샹의 관점에서 보면 치과의사들이 사용하는 기구들도 관점을 달리하여 다른 장소에 전시되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과 반 예술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입니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특별전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100년 전 그를 비난한 비평가들은 잊혀졌지만 당시 많은 비난 받은 마르셀 뒤샹은 오늘날 현대 미술에 한 획을 그은 작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비난받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에 남기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주장과 시도는 항상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비난받고 욕먹는다고 해서 너무 억울해하거나 섭섭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2015년 3월 9일>
 
※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