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15)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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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15) 숙제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0.03.05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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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내 마음 속 숙제 하나가 해결된 날이다.

내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 미국에 이민 와 어렵게 시작했던 대학생활. 당시 Penn State Ogontz Campus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나도 그 친구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때 만나, 맥도날드에서 프렌치프라이 하나 시켜 같이 나눠 먹던 그런 친구였다.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해, 휴학을 밥먹듯 해야 했던 친구. 내 결혼식 때 처음부터 끝까지 날 옆에서 도와주고, 허니문 가서 쓰라고 봉투를 하나 찔러주는데… 봉투 안에는 그 친구의 일주일치 주급에 해당하는 500불이 들어 있었다. 사실, 그 친구가 찔러 준 그 돈은 신혼여행에서 내가 쓸 수 있었던 전재산이었다. 서로가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Joseph Kim. 눈물겨운 내 친구다.


한동안 소식을 모른 채 살다가, 갑자기 연락이 됐다. 거의 15년 만이다. 그 친구는 ‘Wallgreen’이라는 Drug Store에서 스토어 매니저가 되어 있었고, 아직 결혼도 못한 채 일에만 매달려 지내고 있었다. 치과 치료가 필요해 이곳저곳 알아보다, 우연히 날 발견하고 내 오피스(치과)로 왔다. 그렇게 재회를 했다. 황폐해진 그의 치아를 책임져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내 스탭들에게 이야기했다. 이 친구의 copay는 무조건 내가 부담한다고. 보험에서 커버되는 비용은 수급을 하고 나머지는 내가 이미 예전에 다 받았으니, 치료비에 대해선 언급 하지마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거의 Full Mouth Reconstruction 수준의 치료를 시작했다. 마지막 단계로 Implant Fixture 3개를 심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가 다 끝나고 ‘이제 맛있는 거 마음대로 먹고 잘 지낸다’라는 스토리로 끝이 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끝도없는 치료에, 비싼 기공비가 자꾸 쌓이다 보니 내가 그에게 말을 건냈다. 재료비, 기공비 등 애초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상회해 몇 백 불 정도는 생각해 줘야겠다고… (내 성격에 그렇게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내 마음속에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서운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자 그 친구 대답은…

“I cannot afford… How about we stop the treatment for a while?”

정확하진 않으나 그런 내용이었다.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잠시 치료를 멈추는 것은 어떠하겠냐는 얘기였다. 아~~ 괜히 이야기를 꺼냈나? 그래도, 그 정도 부담은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Implant Restoration을 마치지 못한 채 연락이 끊겨버렸다. 이미 치아는 만들어져 왔는데, 연락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다 5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고 내가 아는 이 친구는 그 정도의 돈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젊어서 힘들 때 같이 고생하고 ‘오만 불’ 같은 그때의 ‘오백 불’을 난 잊어버리고 있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놈이 오늘 다시 날 찾아왔다.

먼저 연락하지 못해 너무 미안했고, 날 다시 찾아와 줘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동안 너무 바빴다고. 그동안 다시 황폐해진 잇몸 컨디션을 보니 지난 5년간의 세월이 훤히 보인다. 하늘이 우릴 도와주려는지, 5년 전 만들어 놓은 치아들이 어제 만든 것처럼 정확히 들어맞는다. 너무나 감사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다.

내 마음 속 오랜 숙제가 해결된 날이다.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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