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⑲ 의사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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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⑲ 의사의 사과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 승인 2020.12.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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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⑲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제목을 보고 혹시 의사가 아침에 먹는 사과(Apple)에 대한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건강은 물론 동맥경화, 당뇨병, 피로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의사로서 아침에 먹는 사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 사과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외 몸에 좋은 과일을 소개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하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 할 이야기는 의사로서 정말 하기가 어렵고 또 해야 할지 그 자체가 고민이 되는 사과(Apology)에 관한 이야기다.

의사가 환자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낯설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과할 일이 없거나, 사과를 안 하는 것이다. 사과할 일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의료분쟁의 이면에는 늘 의사의 사과에 대한 불만이 만연해 있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사과에 대한 편견이 있다. 잘못을 빨리 인정하면 피해를 본다는 말이 흔하게 있고, 또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서인지 분명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하면 자신이 잘못한 것보다 더 큰 잘못을 인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사과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입장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진정성 있게 사과를 했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과는 땅에 떨어진 사과다. 본인의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은 개인에게 달린 것이겠지만 적어도 잘못된 방법으로는 사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사과는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단순히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은 유감의 표현이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다. 그냥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과 “내가 그만 약속을 깜빡 잊었어.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라고 말할 때의 차이점이 느껴지는가? 구체적인 사과는 단순한 사과에 비해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법이다. “네가 그렇게 화내는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기분 나쁘게 했다면 사과할게”라는 표현도 사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또한 유감을 넘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뜻으로 “내가 잘못했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특히 쉽지 않겠지만 “나를 용서해주겠니?"라고 용서를 청하는 단계가 중요하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힘들겠지만 용서를 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과할 때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 있다. 첫째는 “미안해, 하지만…….”이다. 사과의 말 뒤에 그러나, 하지만 등의 접속사를 사용하면 사과의 의미가 퇴색되고 또 다른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둘째는 “만약 그랬다면, 사과할게”다. 당신의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하겠다는 조건부 사과는 듣는 입장에서는 그 진심이 전해질 수 없다. 마지막은 “실수가 있었습니다.”인데, 이 말은 사과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책임 인정’을 회피하려는 조금 비겁한 태도가 내포돼 있다.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라.

베벌리 엥겔(Beverly Engel)이 쓴 <사과의 힘 The Power of Apology>에는 의미 있는 사과에는 세 가지 R이 필요하다고 한다. Regret(유감), Responsiblitiy(책임), Remedy(치유, 보상) 이다. 사과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불편, 고통, 피해를 준 미안함을 반드시 표현해야 하고 그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윤리적, 법적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돌이킬 수 없지만 보상책을 내놓는 것 또한 중요하다.

미국은 의료소송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의사들의 의료사고에 대한 전통적인 대처법은 ‘부인하고 방어하라’로 요약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의사는 뒤로 빠지고 변호사가 앞으로 나서며 정보는 비공개가 된다. 이런 전략에서 의사가 나서서 사과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어쩌면 의사 입장에서는 이 방법이 마음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견해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변호사 배만 불리는 이런 방법은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이런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쏘리웍스 연합(Sorry Works! Coalition)의 창립자 더그 워체삭(Doug Wojcieszak)은 “공개와 사과의 접근방식이 병원의 의료소송을 줄인다.”고 말한다. 미시간 대학병원에서는 엥겔이 말한 3가지 R을 토대로 한, 다음의 4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과 방법으로 대처했을 때 의료소송이 대폭 감소했다고 한다.

1. 유감 - 안타깝습니다.
2. 책임인정 - 제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3. 설명 - 조사 결과 이런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4. 배상. 해결책 제시 - 우리 병원에서 이와 같은 배상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에 관한 결과를 더그 워체삭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미시간 대학병원이 진실말하기 프로그램을 시행한 후, 한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의료사고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면 사람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이제 미시간 대학병원이 어떤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발표하면 변호사들은 소송을 꺼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진실의 힘은 강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의사들의 사과는 타이밍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간단하게 사과하고 조처하면 될 것을 덮어두었다가 늘 문제가 된다. 의료소송에서 의사의 고지의무 위반은 늘 동반되는 단골 메뉴다. 그만큼 환자에게 말을 안 하고 설명을 안 한다는 말이다. 별로 말을 섞지도 않았는데 대뜸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것도 우습다. 그만큼 평소 환자에게 설명을 잘하고 말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과에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의료계는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인간 자체가 완벽하지 못한데 엄격하게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문제가 있다. 탁월한 의사가 아니면 실패한 의사라는 식의 이분법은 사과를 어렵게 만든다. 내 잘못을 인정하면 나는 실력 없는 의사이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나는 사과를 빨리하는 편이다. 크게 의료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어도 환자를 힘들게 했거나 기분 나쁘게 했어도 사과한다. 그리고 해결책을 바로 제시해 준다. 내 경험상 내가 한 사과를 빌미로 더 큰 문제를 끄집어내려는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약 블랙컨슈머라는 판단이 나중에라도 선다면 그때 방어적 자세를 취해도 늦지 않다. 의료사고는 의외로 명확해서 그런 환자는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면 환자의 색은 점차 블랙으로 변해 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을 검색해 봤는데 별로 맘에 드는 말이 없었다. 뭘 기대하고 검색했을까.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은 찾았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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