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교수의 월요편지] 종교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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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교수의 월요편지] 종교와 철학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1.03.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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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당 교황의 서재인 세냐투라 일명 서명의 방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네 벽면은 신학, 법학, 철학, 예술을 표현하는 라파엘로(1483-1520)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철학을 상징하는 아테네 학당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최고 수장인 교황의 서재에 희랍 철학자들에 관한 그림이 한쪽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림들은 율리오 2세(재위 1503-1513)의 명에 의해서 그려진 프레스코화인데 교황은 어떠한 의도로 그러한 명을 내렸는지 또한 당시 라파엘로는 어떤 의도로 57명의 희랍 철학자들의 모습으로 철학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중세시대의 학문의 위계에서 신학이 뿌리라면 철학이나 법학, 문학, 예술 등은 줄기라고 간주하였습니다. 신학이 모든 학문의 가장 근본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율리오 2세의 서재 그림들은 이러한 위계가 없이 신학, 철학, 법학, 예술이 수평적 위치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중세학문의 위계질서가 신학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변화한 하나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에 단지 각주를 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계적인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서양 과학의 역사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면 서양 철학은 플라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흥호 교수는 기독교 신학의 시작도 플라톤 사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최초의 신학자는 플라톤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의 哲人 정치론은 사회를 위계적인 구조로 보고 사회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사회구조는 교황을 정점으로 국왕과 귀족, 기사, 농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중세 서양의 사회구조는 플라톤의 철인정치 사상을 구현한 사회입니다.
모든 만물의 본질은 이데아라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플로티노스(205-207)에 의해서 신플라톤주의로 발전합니다. 우주만물은 초월적인 절대적인 존재(一者)로부터 유출되어 창조되었고 따라서 모든 만물에는 초월적 절대자가 내재하고 있다는 凡在神論이 신플라톤주의의 핵심 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신비주의 기독사상가인 에크하르트(1260-1327)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희랍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도 영향을 줍니다. 희랍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와 희랍철학을 접목하여 기독교 신학의 초석을 세우고 초대 교부가 됩니다.
중세 교부신학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킨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근간으로 스콜라 철학을 완성시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네 가지 원인설인 목적인, 능동인, 형상인, 질료인을 가지고 세상을 설명합니다. 질료인은 피조물이고 능동인은 어떤 목적인을 가지고 질료인을 만든 창조주입니다. 천체운동을 포함한 모든 운동은 원인이 꼭 존재해야 하는데 최초로 우주에 운동력을 부여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주가 일정한 법칙 하에 천체 운동을 하는 것만 보아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논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의 존재 증명 방식은 인간의 유한한 이성으로 神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칸트의 이론에 의해서 부정됩니다. 神은 초월적 존재이므로 언어로 논증되는 순간 그것은 神이 아닙니다.
서양 철학사를 보면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중세 기독교 교부 신학은 희랍 철학을 수용한 덕분에 고등종교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중세 교부신학은 철학적 교리로 인해서 교조화되어 신앙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철학화된 기독교 신앙을 희랍철학에서 해방시킨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1483-1546)입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기독교 영성 회복을 강조하여 교조화된 기독교에 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영성만을 강조하면 무조건 믿고 보라는 이른바 ‘묻지마 기복신앙’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영성이 배제된 종교는 철학이고 철학이 배제된 종교는 맹신이라는 김흥호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초월적 영성과 깊은 철학적 사유, 그리고 윤리적인 삶은 종교의 세 축입니다.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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