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2) 세기말 천재들의 사랑방 빈(Vin)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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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2) 세기말 천재들의 사랑방 빈(Vin) 카페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1.05.0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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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세기말이라고 하면 유럽에서는 약 1860년대부터 1914년 세계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를 일컫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그리운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을 지닌 ‘벨 에포크(Belle?oque)’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유럽 국가들이 호시절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지 착취로 유럽 자본주의가 꽃피웠기 때문입니다.

벨 에포크 시대에 파리에서 인상주의가 시작되었다면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구스타프 크림트가 주도한 분리파라는 새로운 모더니즘 예술운동이 태동됩니다. 탈퇴 또는 분리라는 뜻의 독일어 체제시온(Sezession) 선언은 전통적인 아카데미 예술과 단절하고 전위적인 새로운 예술을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빈에서의 새로운 문화예술 운동은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건축과 음악, 철학, 정신의학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문화예술 전반에 영향을 줍니다.

19세기 말은 사회 경제적 변화로 인해 오스트리아를 지배하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적 정치적 지배력이 약화되고 새롭게 부상하는 시민계급이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는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당시 빈은 학문과 문화예술의 변화를 주도하는 다수의 천재들이 출현하면서 유럽에서 일약 학문과 문화예술의 중심 도시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미술에서는 빈 분리파를 주도한 구스타프 크림트와 그의 제자 에곤 쉴레, 말러 부인 엠마를 70살이 되도록 사랑한 오스카 코코슈카, 음악에서는 20세기 천재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현대음악의 시조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렉산더 쳄린스키, 그리고 천재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켄슈타인, 정신의학자 지그문트프로이드, 건축가로는 오토 바그너, 아돌프 로스, 요제프 호프만, 작가로는 슈테판 츠바이크, 피터 알텐베르크 등 많은 예술가와 학자, 작가들이 출현합니다. 당시 이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집단지성으로 모여서 서로 교류하고 토론하면서 자신들의 예술과 학문을 발전시킵니다.

크림트, 코코슈카, 비트켄슈타인 쇤베르크, 아돌프 로스 등 세기말 빈의 최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이었던 빈의 최고 카페 첸트랄
크림트, 코코슈카, 비트켄슈타인 쇤베르크, 아돌프 로스 등 세기말 빈의 최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이었던 빈의 최고 카페 첸트랄

카페 문화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카페는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공론의 장 역할을 함으로써 계몽사상을 확산시키는 반체제 운동의 중심 장소가 됩니다. 특히 카페 프로코프는 프랑스 혁명가들의 근거지로 프랑스 혁명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빈에 머물 동안 세기말 빈에 살던 천재들의 흔적과 체취를 느껴보기 위해 하루 시간 내어서 이들이 출입했던 백년 넘은 카페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중 인상적인 카페는 빈 시민들이 사랑하고 커피맛이 좋다는 카페 하벨카(HAWELKA)입니다.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실 겸 찾아갔을 당시 아직 오픈을 준비 중이라 커피를 마시지는 못했지만 이 카페 주인으로부터 카페 내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카페 주인은 설립자의 아들인데, 그는 카페 내부에 놓인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흉상을 보여주면서 카페의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스럽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카페 내부 분위기는 꼭 옛날 동숭동 문리대 앞에 있던 학림다방 분위기입니다. 내부 실내 장식도 낡고 허름한데도 수리를 안하는 이유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벨카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카페는 합스부르크 왕궁 인근에 있는 카페 첸트랄(Central)입니다. 세기말 빈의 천재들이 애용하였던 사랑방으로 명칭 그대로 빈을 대표하는 중앙 카페입니다. 페르스텔라 공작 자택을 개조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입구부터 화려하고 천장도 높고 내부도 화려합니다. 그리고 서빙하는 직원들도 당당합니다. 입구에는 이 카페에 자주 머물면서 글을 썼던 작가 페터 알텐베르크 모형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화가들이 자주 이용하였던 빈 분리파의 전당 체제시온 건너편에 있는 카페 뮤제움은 카페 앞에 넓은 야외테라스가 있어서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 구경하기 좋은 곳입니다. 카페 자허가 자랑하는 황실 납품 초코렛케익 자허 토르테는 명성대로 맛이 좋습니다. 최근에 학문 간의 벽을 허물고 융합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백번 옳은 주장입니다. 21세기는 결코 골방에 틀어박혀 홀로 연구해서는 창조적인 발상을 할 수 없습니다. 빈의 카페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예술과 학문 발전은 서로 다른 분야와 토론하고 융합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백년 전 빈이 학문과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카페의 토론 문화를 통하여 학문과 예술 간의융합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라 백년을 지속할 수 있는 카페가 생겨났으면 합니다. 빈을 돌아보면서 은퇴 후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마음 놓고 출입하면서 토론하며 머물 수 있는 카페를 만들어볼까 하는 황당한 생각도 해봅니다.


※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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