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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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친절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1.05.03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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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Minniaolis, MN에서 열린 재판의 결과로 인해 또 한 번 미국은 용광로 같은 열기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George Floyd를 죽음으로 몰고 간 한 경찰관의 무리한 진압에 대한 재판이 열렸고, 이전의 미국에서의 관행과는 판이한 판사의 선고가 나온 것이다.  검사가 제시한 모든 charge에 유죄가 적용되어 그 경찰관은 40년 선고를 받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또 한 번의 흑백 인종갈등 문제가 수면으로 떠 올랐었다. 백인 강경파에서 다시 민주당으로 권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정치적인 영향이 짖게 서려있음을 지켜보게 된다. 이런 인종문제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아시안계를 향한 무차별 폭력이 꼬리를 물고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지금 미국 내 인종 갈등은 어느 때보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어려운 미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시국 속에서 이민자의 삶은 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하며 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막연한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 두 명의 낯익은 환자가 찾아왔다. 둘 다 40대 초반 비슷한 연배의 백인 아줌마들이다. 한 명의 이름은 Christine, 다른 한 명은 Lori이다. 이 둘을 생각하면 난 언제나 흥분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Lori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신참내기 페이닥터로 일을 하고 있는 병원에서 만났다. 그땐 Lori도 신참 간호사였는데 둘 다 정말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병들이었다.  내가 좀 미숙해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잘 참아주곤 했는데, 어느 눈이 많이 오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야간 진료를 하고 있는 날이었다. 환자분들도 거의 없는 저녁이었는데 예약도 없던 Lori가 날 찾아와서 봉투를 하나 주고 사라졌다. 물기가 축축이 뭍은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그것도 거리에서 공짜로 구할 수 있는 싸구려 크리스마스 카드. 환자에게서 처음으로 받아본 카드 한 장이었고, 그것을 전해주기 위해 눈길을 헤쳐왔던 그 따뜻했던 Lori의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Lori는 어릴 적부터 치아상태가 좋지 않아 부분틀니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내가 새로 만들어준 그것을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다,
벌써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 사이 결혼도 하고 딸도 있고 유복한 가정을 이루고, 지금도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으로 만나고 있다. 가끔 옛날이야기를 하며 같은 마음으로 “지금의 우리를 보면 우린 참 출세했다”라며 미소를 나눈다.

Christine은 내가 개원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미소가 정말 예쁜 아가씨였다. 그 후론 내가 어디를 가던지 Christine을 우연히 만나는 것이었다.  Super Market, Gas Station, Home Depot, 투표소, 정말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서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날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를 데려가 자기 주치의이고 정말 잘 치료해주는 의사라고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난 미국 사람들이랑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 미숙했었는데, 그런 나를 이끌고 다니던 Christine의 친절함이 내겐 너무나 큰 힘도 되고 위로도 되었었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이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하며 살던  아이였는데, 이젠 본인만큼 착한 남편이랑 딸 둘이 있는 중년이 되어간다.  늘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그 딸들이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병원에 들려 내 손에 쥐어주고 간다.

철저한 이방인이고 거기에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양인 의사에게 이런 친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종문제의 갈등이 심화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개인의 차원에서 제대로 된 사회 기초가 만들어지고, 그 뿌리가 깊어지면 그 영향력은 오래 그리고 넓게 퍼져갈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의 진료현장에서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고 누구라도 같은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시간을 메워 가자고 혼자 생각해본다.
Humility is not thinking less of yourself, it's thinking of yourself less. - C.S. Lewis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바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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