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30) Enjoy you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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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30) Enjoy your day!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1.06.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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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월요일 아침 Dr.B와 함께 하루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내 스케줄은 Column 두 개가 꽉 차 있었고, 또 언제나처럼 Dr.B의 스케줄은 한 Column 이 빼곡 차 있었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구나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Dr.B가 내 스케줄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You have no production today. It will be a long day for you.” 날 위로하며 한마디 한 것이다.  

번역하면 이런 것이다. “오늘은 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요. 수고 많이 하세요 ㅠㅠ” Dr.B의 스케줄을 보니 하루 종일 크라운 치료가 줄을 섰다. 그것도 Multiple crown and bridge works on single patients로. 그야말로 난 쪽박이었고, Dr.B는 대박 스케줄이었다.
 
내 스케줄은 Limited Evaluation, Follow Up Visit, Denture Adjustment, One Surface Bonding, Root Tip Extraction, Emergency Exam이 반복되고 있었고, Molar Root Canal Therapy가 하나 있었는데, 이 환자분은 결국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난 하루 종일 짧게 많은 환자분들을 봐야만 했다. 아침에 같이 하루의 스케줄을 체크할 때 이미 그런 하루가 되리라고 알고 있었고,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오늘은 손을 쓰는 일보다 말을 많이 하는 날이 되고, 오랜만에 환자분들이랑 같이 수다를 떨 수 있는 날이라 나름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Dr.B의 우려대로 이런 식의 스케줄이라면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하는 그런 날이 되는 것도 분명했다. 사실 이런 스케줄이 반복이 되면 Practice Owner 입장에서는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매니저를 불러 Production이 없는 스케줄에 대해 닦달하고 심각히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가 치과에서 늘 접하는 매거진이나 학회지들을 보면 치료 중심의 기술적인 Article보다는 어떡하면 오피스에서 Production을 더 올릴 수 있는가에 대한 비즈니스 기사, 자료가 더 많을 때가 있다. 세미나를 주최하는 곳에서도 Business Management는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그런 세미나나 Articles을 거의 20년 넘게 나름 따라가다 보면 결론은 언제나 이것으로 요약된다. 어떡하면 좀 더 큰 Treatment Plan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좀 더 근사한 Presentation을 해서, 좀 더 빨리 환자분들에게서 Yes라는 답이 떨어지게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교육을 하는 곳에서는 나름 체계적인 전략을 소개하고, 환자들에게 도저히 예스라는 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가르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몇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치과는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는 치료체계가 보통인데 개인 한두 명이 모든 치료를 다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그런 경험은 수많은 Trial and Error가 뒷받침이 되어줘야 하는데, 과연 이런 비즈니스 전략이 치과라는 특수한 직업형태와 Fit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훌륭한 Treatment Plan이 있다고 하더라도 환자들은 Lego가 아닌데 예상한 것처럼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매달 디테일한 Production의 계획이 세워졌으면 결국은 사람보다는 그 숫자 놀음에 우린 끌려다닐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완벽해 보이는 Treatment Plan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의사들의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 꼭 그렇게 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학술지나 매거진에 나오는 Overwhelming한 케이스를 계속 공부해 나도 그런 훌륭한 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내가 늘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하는 말처럼, 그런 기술적인 것인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가능한 것이다. 환자들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맞추는 가운데 가장 좋은 플랜을 소개하고 환자분들과 같이 소통하며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내가 Mento로 삼는 선배형이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Patient care and business don’t go together.” 눈앞에 있는 당장의 이익 창출을 최대 목표로 삼는 것은 몇십 년 환자 치료를 해야 하는 우리 의사들에게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Dr.B는 몇 주동안 Bonding Restoration을 지겹도록 많이 했다. 목과 손이 아파 진통제까지 먹으며 입으로는 ‘Sicking tired of doing same things over and over’라고 푸념했지만 묵묵히 환자분들을 보아왔다. 그러다 오늘 같은 스케줄을 접한 것이다. 첫 환자를 위해 분주히 준비하는 Dr.B 에게 한마디 건넨다. “Enjoy your day. It ain’t happen everyday.”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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