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33) 하회탈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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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33) 하회탈의 미소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1.09.02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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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아침 일찍 오피스로 ‘황씨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어눌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힘이 들어서인지 스태프가 날 바꿔준다. “원장님, 오늘 일이 없어 집에 있으니까 병원에 가도 되겠습니까?” 황씨 아저씨는 집의 지붕, 사이딩 보조를 하시는 그야말로 ‘막일’로 매일을 사시는 분이시다. 몇 년 전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을 수리하시며 인연이 되었다. 워낙 치아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으시고, 식사하시는 것이 편하지 않은 것 같아 꼭 한 번 병원에 오시라고 말씀드렸더니 몇 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전화가 온 것이었다.

진찰을 해보니… 상태가 심상치 않다. 앞니 몇 개와 Premolar 몇 개가 간신히 남아 있었는데, 어떻게든 그 남은 치아로 음식을 드시느라 아래턱이 완전히 삐뚤어져 있었다. 내가 남은 부실한 치아를 모두 정리하고 틀니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고 곧바로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이미 작정을 하고 오신 듯했다.

사실 이분이 적지 않게 나올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난 그 비틀어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건 내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황씨 아저씨 원래의 얼굴을 찾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었다. 오신 바로 그날 동의를 얻고 남은 치아 모두를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몇 주 뒤에 다시 오셨는데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남은 치아는 없지만, 이제 얼굴이 제대로 돌아온 것 같다”고…. 아무런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본인도 자신의 얼굴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틀니 만드는 과정에 대해 잠시 설명을 드렸다. 몇 년 동안 얼굴의 근육 활동이 비정상적이었던지라 그런 컨디션에서 틀니를 만들었다 해도 나중엔 안면근육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몇 년 동안 아래턱의 활동이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치아를 어떻게든 사용하느라 비대칭이 돼 버렸는데, 거기에 맞춰 틀니를 제작하게 되면 비교적 여유를 찾은 근육이 새로이 만든 틀니로 교합이 만족스럽게 되지 못하고, 그러면 내가 원래 기대했던 황씨 아저씨의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드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설명을 드리니 황씨 아저씨가 어렵지 않게 이해를 하신다. 그러니 잔뜩 기대를 하셨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가 근육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 치료를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규칙적인 스케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하루하루 노동의 무게가 큰지라. 그래서 말씀드렸다. 무조건 비가 오면 전화하시라고. 스태프들은 미리 약속 없이 방문하시는 환자들을 끔찍이 싫어하지만 이분은 전화하면 언제든 오시게 약속을 만들어 드리라고 했다. 우리 스태프들도 황씨 아저씨의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전화가 오면 무조건 일순위로 오시게 했다.

며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세워 놓은 치료 스케줄이 자꾸 늦어진다. 그래도 일이 계속 있으신 것 같아 맘은 좋다. 처음 뵈었을 때 그 일그러진 얼굴이 오실 적마다 편해 보이신다. 지금은 치아가 전혀 없으니 하회탈 같으신데 언젠가 장동건처럼 변하실 생각을 하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비가 자꾸 와서 황씨 아저씨를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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