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35)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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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35) 근거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 승인 2022.04.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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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우는 아이를 연속으로 3명을 붙들고 치료한 적이 있다. 귀가 아플 정도로 목청이 큰 아이들이어서 내 목소리도 커지고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치료를 잘 마쳤지만 수면진정치료를 권할 걸 하고 후회했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 있다. “아이는 잘 때가 제일 예쁘다.” 하지만 한밤중에는 어김없이 울어 재껴서 잠을 설치고, 다음 날 피곤해서 힘들어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힘들어했던 탓에 19세기~20세기 초에 미국과 유럽의 각 가정에 반드시 있었던 필수 약이 바로 ‘윈슬로 부인의 진정시럽(Winslow’s Soothing Syrup)’이었다. 간호사였던 살롯 윈슬로 부인(Mrs. Charlotte N. Winslow)은 젖니 때문에 아파하는 손자를 위해서 치료제를 연구했다고 한다. 
간호사로 일하며 배운 지식과 오랜 연구 끝에 이 시럽을 만든 것이다. 당시 이 약의 광고 문구가 실제로 이랬다. “아기 이앓이에 좋은 윈슬로 부인의 진정시럽”, “시럽을 먹어 잠이 든 아이들은 부모가 퇴근할 때쯤 천사 같은 눈동자로 반겨줍니다”.

1849년 이 시럽이 나오자 대중들은 미친 듯이 구매했다. 그 이유는 바로 시럽을 먹이면 아이가 5분 안에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남북전쟁 시기에 부상을 입고 돌아온 병사들이 진통제 대용으로 이 시럽을 사용하기도 했다. 대중들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이 시럽 때문에 윈슬로 부인은 ‘어머니의 친구’, ‘고통의 해방자’로 추앙받았고, 심지어 영국의 유명 작곡가인 에드워드 엘가는 “윈슬로 부인의 진정 시럽”이라는 곡을 작곡해 헌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을 뒤로하고 이 시럽은 1911년 판매 금지 대상이 됐다. 주성분이 아편과 모르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당시에는 마약에 대한 위험성을 잘 몰랐고 마약을 치료제로 사용했기 때문에 간호사였던 윈슬로 부인도 당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아편과 모르핀으로 시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율규제권
어떤 약이나 치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수많은 지식과 기준, 경험이 필요하다. 단지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자칫 판매자끼리 담합하거나 위해를 감추거나 문제 제기를 음해로 치부해버리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기고 나서야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한때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가습기 살균제도 그랬다. 문제가 되는지 모른 채 상당 기간 판매, 사용되었고 알 수 없는 폐질환이 발생해도 제조사는 문제를 가리기에 급급하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치과 개원의들이 10여 년 전까지 신경치료 시 사용하던 ‘디펄핀(Depulpin)’도 그랬다. 이 약재를 사용하고 나서 신경치료 시 통증으로 인한 불만이 현저하게 줄어 개원가의 필수 약재로 쓰였다. 하지만 2012년 이 약재의 의료기기 허가는 취소되었고 수입도 금지됐다. 1급 발암물질 파라포름알데히드를 주성분으로 하는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적 같은 효과에 심취한 일부 치과의사들은 계속 사용을 하고 있고 여전히 밀수입은 이뤄지고 있다.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고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익힌 사람만 의료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어떤 문제를 야기하지 않도록, 혹은 문제를 빠르게 인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그 분야의 일정 독점권과 자율규제권을 주는 것이다. 의무가 아닌 권리로 보장해 주는 것은 외부 규제를 가하기보다는 스스로 조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면 권리에 따르는 윤리적인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근거중심의학
치료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물어볼 수 있다. 어떤 근거로 그런 치료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럴 때 대답하는 것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교과서대로 한다고. 왜냐하면 근거(Evidence)란 결론이나 판단의 기초가 되는 자료나 정보를 의미하고 학부 때 배웠던 교과서는 대부분 오랜 검증을 거친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과서는 잊히고 수많은 임상 세미나, 임상 책에 나오는 Case report가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누군가가 이미 시술한 사진과 동영상은 내가 행하는 진료에도 힘을 실어준다.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이전의 의료는 의사의 권위, 나이, 서열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과 경험, 직관 중요시하는 권위중심의학(Eminence-based medicine)이었다. 과학적인 근거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거가 미약한 내용의 책이나 교수님의 말이라고 무조건 신뢰하기보다는 최근까지 이루어진 체계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의학적인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

임플란트 치료가 대세를 넘어서 경쟁적으로 시술되고 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던 시절에는 실패하는 임플란트에 등골이 싸늘해졌겠지만, 크라운 가격으로까지 내려간 치과에서는 이제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도 하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시술을 받는다면 그보다 환자에게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는 포기해야 한다. 보험 임플란트를 시술하기 위해서 근거가 부족한 치료계획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의사 혼자 안으면 윤리적 비판을 면할 수 있겠지만 현실의 피해는 대부분 환자다. 근거가 충분한 치료계획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근거중심치의학은 자리를 잡고 있다. 충분한 근거가 부족한 경우에는 ‘그저 해봤다’라는 증례발표(Case report)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한때 아이가 있는 집의 상비약이었던 윈슬로 시럽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았다. 수십 년이 지나 임플란트가 아닌 획기적인 치아대체술이 나올 수도 있다. “수십 년 전 저가의 임플란트 시술이 만연해서 수백만 명이 임플란트로 고생했다”라는 회고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적어도 먼 훗날의 후배들이 보기에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근거중심의 치료였다’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저 해보는’ 치료는 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의사에게 ‘그저’ 몸을 맡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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