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36) 선택과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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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36) 선택과 후회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2.05.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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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모든 치아를 임플란트로 해 넣으신 환자분이 아주 오랜만에 오셨다. 주기적인 내원에 반응하지 않다가 예약도 안 하고 불쑥 찾아온 이유는 대부분 탈이 나서다.

리셉에서는 이런 환자분들에 대한 응대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만 반응은 심상치 않은 경우가 많다. 예약을 왜 안 하고 오셨냐는 질문에 벌컥 화를 낸다. 주기적 검사에 왜 내원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도 세상 살아가는 게 어디 만만하냐는 둥 치과에 누가 그렇게 자주 오냐는 둥 조금은 엉뚱한 소리를 하시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신다. 일단 아프면 예민해지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따지듯이 물으면 화를 돋게 된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받아주고 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잘잘못을 따지려는 사람에게는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수술동의서에는 수술의 부작용, 실패 가능성, 부작용 등에 대해 이미 고지되어 있다.

그리고 주기적인 내원의 필요성과 그것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은 환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까지 쓰여 있다. 그리고 그런 내용에 이미 사인까지 한 상태다. 하지만 동의서를 받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절차일 뿐이다.

법적인 다툼이 생기면 이 동의서에 대해서도 문제 삼는다. 정말 얼마나 자세하게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했냐를 따진다. 환자가 이해하지 못했는데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고 하면 설명의 의무에 소홀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대학병원에서는 설명한 내용을 그림이나 자필로도 남긴다. 설명한 내용, 그림 등이 많이 남아있으면 고지의 의무를 어느 정도는 다 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원가에서는 대부분 설명하고 사인 정도만 받기 때문에 늘 설명이 부족했다는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수술
모든 의료적 행위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부작용에 관해서 설명할 의무가 의사에게는 있다. 하지만 어느 범위까지 얘기를 해야 하는지는 늘 어려움이 많다. 사랑니를 뽑고 급성으로 패혈증이 와서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이 뽑은 후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고지까지는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해서 굳이 사랑니 발치를 거부할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어차피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전신마취 수술을 두 번 정도 받았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고 일어나는 느낌일 수도 있지만, 전신마취 동의서를 읽어보면 만만치 않다. 저산소증, 마비, 괴사 등의 부작용과 함께 마취 후에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있다. 그런데도 동의서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후회 심리학
후회는 미리 앞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미리 앞서는 것은 불안과 초조함이고 후회는 뭔가 잘못되었을 때 하게 되는 것이다.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을 경우 환자는 과연 그 수술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자신이 병원과 의사를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지 후회한다. 의사는 설명을 더 잘하지 못한 것,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 못한 것, 더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 심지어 의사가 된 것 자체를 후회할 수도 있다.

후회는 고통스럽고 오랫동안 지속되며 행복감을 앗아간다. 인지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에이머스 트버스키(Amos Tversky)의 돈에 얽힌 후회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투자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람 쪽이 더 후회한다고 결론 지었다. 
치료에 대해서도 애리조나 대학의 테리 코널리(Terry Connolly) 등은 환자가 치료 선택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음에도 치료 결과가 효과적이지 못할 때 자신을 더욱더 탓하며 오랫동안 후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적극적으로 의사의 말에 동조하고 적극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더 후회한다는 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협조적이고 흔히 의사의 말에 잘 동조하는 사람일수록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그 후회감과 상실감이 더 클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회에 민감한 사람은 치료의 선택에 소극적이고 치료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치료 선택 과정을 설명할 때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치료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환자의 경우, 그 이유는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특히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 치료를 받겠다고 선언한 자신을 탓하며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후회를 예상하는 환자는 치료의 선택보다는 회피(부작위)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작위 편향은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유를 설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건강할 때는 부작용을 걱정하면서 백신을 맞으려 하지 않는다. 

백신의 부작용 가능성이 작고 부작용도 가벼운 증상인 경우가 많지만 맞지 않는다. 실보다 득이 크다고 해도 부작용이 걸릴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독감이 훨씬 힘든 증상임에도 쉽게 독감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가족을 치료한다면?
“원장님, 내가 원장님 엄마라고 생각하시면 어떤 치료를 권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난감하다. 이 말은 최선의 치료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지만, 환자의 질문에는 비용이나 의료사고, 병원운영 등에 대한 부대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환자에게 좋은 것을 권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머니들의 성향도 모두 다르다. 의사를 맹신하는 사람과 부작위 편향을 가지는 환자는 모두 치료의 선택과 후회의 성향이 다르다. 후회 없는 치료의 선택을 위해서 의사가 단순하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의사에게 선택해 달라고 무조건 믿는다고 말하는 환자에게 너무 고마워할 필요도 없고, 후회할까 봐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 환자를 탓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불확실성이 나중에 어떤 후회를 만들어낼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최적의 치료 과정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치료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과 효과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고 환자의 사고방식과 지향에 맞춰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다. 환자의 선호도와 의사의 선택에 적절한 범위는 늘 존재한다. 그 범위에는 불분명한 의술의 회색지대가 있을 수도 있다. 

그 회색지대가 수술의 부작용이고 그것을 커버하는 것이 수술동의서라 할지라도 후회를 최소로 할 수 있는 선택은 의사와 환자 모두가 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주도권은 여전히 의사에게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선택과 후회는 의사로서 평생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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