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만성질환 그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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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만성질환 그 너머
  • 김동석 춘천예치과 원장
  • 승인 2022.09.07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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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7년 만에 내원한 환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방사선 파노라마 사진을 보고 진료 스텝이 무언가를 얘기한 후에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진 것 같았다. 사진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6개 정도는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치주질환이 진행되어있었고 3~5개 정도의 치아도 위험해 보였다. 7년 동안 치과에 내원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불편감을 느끼지 못하고 통증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갑자기 이를 뽑아야 한다는 나의 말에 믿기 어렵다는 눈빛과 함께 제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달라고 호소를 하는 표정을 짓는 것만 같았다.

만성적인 질환, 즉 만성 치주염은 환자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고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가 조금 나거나 이가 조금 시리거나 하는 정도지만 결국에는 이가 흔들려서 내원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환자는 잇몸이 조금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는지 3년 전부터는 잇몸 약을 약국에서 구매해서 계속 복용했다고 한다. 잇몸 약에 100만 원 이상을 쓴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 같은 ‘OO 탄’이었다. 환자가 잇몸 약이라고 굳게 믿고 먹은 그 약은 사실은 일본에서는 잇몸 약의 효과가 없어서 판매중지가 된 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통, 소염의 효과가 인정되어 치과 치료 후에 일시적으로 복용하되 장기복용은 권장되지 않는 약으로 판매가 허가된 것이다. 진통, 소염제라고 했다면 3년 내내 매일 복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꾸준하게 먹으면 잇몸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먹은 것이다. 
결국 잇몸은 다 망가지고 그 상태를 진통, 소염제로 버틴 꼴이 돼버린 것이다. 

무증상을 치료해야 하는 이유
‘만성(Chronic)’ 은 오랜 시간 지속되는 장기적인 것을 의미한다. 즉 만성질환은 긴 시간, 때로는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질환이다. 만성질환은 급성질환의 개념과 대비된다. 
우리가 흔히 겪는 질병인 감기가 대표적인 급성질환이다. 감기는 기침, 콧물, 가래, 인후통 등 짧은 기간 동안 비교적 심한 증상을 동반한다. 이와 달리 만성질환은 보통 느리게, 종종 몇 년에 걸쳐 발병한다. 증상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며, 그 강도는 급성과는 다르게 크지 않다.
만성질환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완치가 가능하다면 만성질환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만성질환은 완벽한 치유법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 꾸준한 관리를 요하는 점이 중요한 특징인 것이다. 치유법이 없다는 것이 만성질환을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꾸준히 치료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완치는 안 되더라도 질병의 진행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하고, 영구적인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막는 것이다.

돌봄의 초점은 사람
급성 염증으로 인한 통증으로 이를 뽑는 것과 만성 염증으로 안 아픈 이를 뽑는 것은 심리적 스트레스에 큰 차이를 보인다. ‘앓던 이 뽑는다’라는 느낌은 분명 통증을 없앤다는 
‘치료(治療)’의 명분을 느끼겠지만, 아프지 않은 이를 뽑는 것은 환자에게는 ‘상실(喪失)’이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이 의학적 돌봄의 초점 되어야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 것과 그 질병이 환자에게 발현되는 현상은 다르다. 질병은 신체의 어떤 기관이나 조직, 기능과 구조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실체이고, 환자에게 발현되는 현상으로서의 질환은 자신이 느끼는 불편감, 기능의 상실 또는 상실될 것이라는 불안감 등의 정신적인 고통도 포함된다. 카셀(Eric J. Cassell)은 이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라는 사람(person)과 고통(suffering)의 문제에 주목해, 그 사람 자체 즉 ‘온 사람(whole person)’의 괴로움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즉 질병 자체보다 아픈 ‘사람’이 의학적 돌봄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20세기의 현대의학이 신체적 통증에 잘 대처했지만,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부족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파노라마 사진 그 너머
외래진료실에서 환자의 본인 증상에 대한 표현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았다. 
반면 진단기계가 수치의 형태로 바꾸는, 수치화된 생체물질이 주된 관심사였다. 이러한 차별은 진료실에서의 환자/의사 상호작용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당뇨 센터의 외래진료실에서는 첫째 환자가 느끼는 증상을 질문함으로써, 둘째 진단기계를 사용한 검사를 통해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한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이러한 크게 두 종류의 진단방식 중 환자의 증상에 대한 언급은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았다. 서술적이고 ‘주관적’인 환자의 본인 증상에 대한 진술보다는 ‘수치’라는 간명한 단위가 증명하는 진단기계의 검사 결과가 중요시되고 있었다. 환자의 자신 몸에 대한 인지보다 진단기계에 더 의존하는 상황은 전자차트의 기입항목에 “명시”되어 있었다. 환자의 몸에 대한 표현은 ‘주관적 증상(subjective symptom)’란에, 진단기계가 나타내는 수치는 ‘객관적 발견(objective finding)’란에 기입되고 있었다. 전자차트가 명명하는 ‘주관’가 ‘객관’의 차이는 의사의 태도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주관적 증상의 난을 채우기 위해 의사는 묻고 환자는 답하지만, 환자의 자신 몸에 대한 표현은 보조적인 정보의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환자의 상태에 대한 규정과 그에 따른 처방은 혈당과 당화혈색소의 수치에 배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김태우, 「만성병 수치화의 생명정치」, 『한국문화인류학』 중

치과에서 환자는 파노라마 사진 속에 갇혀있다. 아니 우리가 환자를 가둬놓은 것은 아닐까? 치과의사로 오래 일하다 보면 파노라마 사진 하나만 봐도 그 환자의 인생과 성격까지 다 알 수 있다는 ‘허언(虛言)’은 누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치주질환이라는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파노라마 사진을 보고 덴탈아이큐(Dental IQ)가 낮다고 누구든 말을 못 할까? 
하지만 그 수치로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는 없다. 늦은 시간까지 가족을 위해 일하다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어쩔 수 없이 이를 소홀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는 가장으로서의 그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까? 
본인의 치료를 위해 모아둔 돈을 자식과 부모를 위해 쓸 수밖에 없는 삶의 무게를 그 수치로 평가할 수는 없다. 

먼저 환자와 눈 마주치과 얘기해야
우리가 그저 그 환자의 질병만 바라본다면 치아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그 사람이 처한 관리환경에 맞는 치료와 처방을 하기 어렵다. 
객관적인 골 소실을 발견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그 사람에게 ‘소실’된 것은 뼈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의 주관적인 
‘상실감’을 무시하면 환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공감을 얻지 못하는 치료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치료를 넘어서는 ‘치유’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파노라마 사진 그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오늘부터라도 파노라마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전에 환자와 눈을 먼저 마주치고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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