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플라세보(Placebo)와 노세보(Noc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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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플라세보(Placebo)와 노세보(Nocebo)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3.04.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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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치과에서 주사를 맞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그 주사를 직접 놔줘야 하는 치과의사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매한가지다. 똑같은 방법으로 주사해도 어떤 환자는 잘 참고, 또 어떤 환자는 비명을 지른다. 그렇다면 덜 아프게 주사를 놓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단 무통 주사기라고 판매되는 주사기를 구매하는 방법이 있겠다. 가는 주삿바늘에 주입되는 속도도 천천히 조절할 수 있고 또 그 주사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플라세보(Placebo)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 주사기를 사용하다 중단한 이유는 단순하다. 
일반 주사기와 비교하면 좀 번거롭고 또 느려서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성격 급한 치과의사는 어떻게 플라세보 효과를 얻으면서 주사를 놔야 할까? 바로 덜 아프게 해주는 방법들을 잘 설명해주면서 주사하는 것이다. 도포 마취를 바르고 가는 바늘을 사용하고 볼을 미러로 진동시키면서 천천히 주입하는 것을 ‘말’로 설명하면서 말이다.

“자, 이제 마취 주사를 놓겠습니다. 미리 도포 마취를 해서 많이 아프지 않으실 겁니다. (주사를 찌른다.) 바늘이 들어갈 때 좀 따가우셨죠? 그래도 이게 제일 덜 아픈 가는 바늘입니다. (볼을 진동시키면서 주입한다. 실제로는 처음만 천천히 하고 대부분은 빠르게 주사를 놓는다.) 제가 이렇게 볼을 흔들어야 덜 아프답니다. 그리고 정말 천천히 주입하고 있습니다. 하실 만하죠?”

실제로 환자는 아팠을 것이다. 도포 마취라고 해봐야 바늘 들어갈 때 따끔한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볼을 잡고 흔들어도 어차피 주사액을 빨리 주입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환자는 ‘덜 아팠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마취 주사를 안 아프게 놓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치과에 가면 얼마나 ‘더’ 아플까 하고 말이다. 결국, 행위도 필요하지만, 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환자는 아픔을 덜 느끼는 플라세보 효과를 가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덜 아플 것이라는 ‘기대감’
플라세보는 위약(僞藥), 즉 가짜 약을 말하는데 약리적 활성이 없거나 효력이 없는 모든 약물이나 치료를 의미한다. 플라세보 효과는 치료가 전달되는 것에 대해 뇌가 보여주는 반응이다.  즉 비활성 물질인 가짜 약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뇌 덕분이다. 
뇌에 원래 저장되어 있던 물질을 나오게 만드는 것은 치료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기대감 때문이다. 모든 위약이 효과 면에서 동등하지는 않다. 식염수 주사는 포도당 알약보다 효과가 좋고, 이 두 가지보다는 가짜 수술이 훨씬 효과가 좋다.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는 위약이 그렇지 않은 위약보다 효과가 좋다. 의미와 절차가 부여되는 친밀하고 집중적인 치료가 효과적인 것은 바로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감이 높을수록 통증 완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랑니를 뽑은 환자들에게 진통제로 펜타닐, 날록손, 식염수 중 하나를 투여하는 실험이 있었다. 펜타닐은 통증 완화에 매우 효과적인 강력한 오피오이드계 진통제고, 날록손은 오피오이드 작용을 막는 길항제이며, 식염수는 말 그대로 가짜 진통제였다. 그런 다음 치과의사를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쪽은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통제가 펜타닐과 식염수 중 하나라고 말해 주었고, 다른 한쪽은 날록손이나 식염수 중 하나가 제공된다고 말한 후 환자들이 느끼는 통증 완화 정도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환자들이 펜타닐을 투여받을 가능성이 50%라고 생각한 그룹에서는 식염수도 30%의 통증 완화 효과를 일으켰지만, 펜타닐을 투여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 그룹에서는 20%의 통증 ‘증가’ 효과를 일으켰다. 통증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효과를 떨어뜨리는 설명의 의무
긍정적인 말과 암시가 통증의 완화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생길 수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해서 잘 설명하는 고지의 의무는 다분히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플라세보 효과를 없앨 수도 있다. 
노세보(Nocebo)는 라틴어로 ‘해를 끼치다’라는 의미이며, 노세보 효과는 어떤 약이나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예상 때문에 치료 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이런 노세보 효과를 쉽게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관리하다가는 아파서 이를 다 뽑게 생겼어요”
“지금 해드리는 치료는 엄청 아플 겁니다”
“피가 많이 나셔서 잘 멈추지 않고 아플 것 같네요” 

사실 이런 말은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잘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조금이라도 이가 아프면 뽑을까 봐 염려증이 생기고, 치료에 더 민감하게 아파하시며, 약간 피가 나오는 것으로 응급실을 찾아간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연관된 부작용들도 부가적인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부정적인 말로 불안감이 높아지면 통증에 영향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뇌의 통증 네트워크를 자극하는 것이다. 
약에 대한 부작용을 듣게 된 환자가 그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커지면 실제로 부작용이 없더라도 부작용을 느끼는 것도 이런 노세보 효과 때문이다.
안 좋은 얘기를 전해주는 것이 치료의 효과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작용에 대한 설명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입장이다. 
결국,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려고 하는 노력과 설명, 통증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부작용에 대해서 최대한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가 주는 긍정적인 신호가 환자의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고, 확신에 찬 의사의 말 자체가 강력한 진통제라고 믿는다면 말이다. 노세보 효과를 일으키는 위의 표현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앞으로 저희가 잘 관리해드릴게요. 최대한 잘 따라 해주시면 남은 치아를 다 지키실 수 있습니다. 같이 노력해 봅시다.”
“아픈 치료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프지 않게 충분히 마취를 잘해드리겠습니다. 치료 중에는 아프지 않으실 겁니다. 마취가 풀리면 통증이 좀 생기지만 약을 처방해 드리니까 심하진 않을 겁니다.”

“피가 약간은 나올 수 있지만, 정상적입니다. 침과 섞여서 많게 느껴지실 수 있지만 놀라지 마세요. 여분의 거즈 챙겨드릴게요. 약 잘 드시면 아프지 않으실 겁니다.”

노세보 효과가 아닌 플라세보 효과를 볼 수 있다면야 최대한 긍정적인 표현을 끌어다 쓸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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