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54회-틀니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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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54회-틀니 단상(斷想)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3.11.0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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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어르신들 틀니를 많이 진료하다 보면 특별한 상황에 종종 접하게 된다. 예전 아들과 찾아온 할머님이 가끔 생각난다. 당신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지병이 있으셨고 본인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자식들은 이를 해 넣으라고 하고 어르신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새 틀니를 하느냐고 마다하신다.(새 틀니를 싫어하실 분이 있을까? 자식 앞에서 부담을 주기 싫어하시는 분이 대부분일 뿐이다.) 그런데 그분은 반대였다. 아들은 지금 굳이 새 틀니를 꼭 해야 하느냐는 말투였고, 할머님은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보호자에게는 오래된 틀니를 교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잘 설명해 드려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어르신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할아버님의 먼저 보내실 때 잘 맞지 않는 틀니를 하고 계신 상태여서 늘 마음에 걸리셨다는 것이다. 저승 가는 길에 제대로 식사를 못 하실 것이 걱정되셨다고. 자기까지 그렇게 하고 가면 할아버님이 자식들에게 대로(大怒)하실 것이 걱정이어서 자신은 새 틀니를 하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지금은 화장문화가 많아서 그렇지만 예전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관 속에 쓰시던 틀니를 넣어주는 일은 흔했다.(화장문화가 보편화한 지금은 봉안당에 틀니를 넣어주기도 한다.) 
자칫 틀니를 넣어 드리지 못해서 저승길에 제대로 끼니를 못 챙겨 먹을 것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노잣돈을 넣어주던 것도 저승길을 걱정하는 자식들의 마음이 담겼던 행위다.

노자(路資)
사람이 죽을 때 돈을 일부 같이 보내주는 문화가 아직 일부 남아 있다. 진짜 현금을 넣어주는 예도 있고,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달러를 넣어주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보통 종이를 돈 모양으로 오린 것을 넣어주거나 망자가 저승 가는 길에 노자(路資)로 쓰라고 관 속에 넣어주는 것이다. 이를 지전(紙錢)이라고 한다. 이는 저승으로 가기 위해 삼도천(三途川)을 건너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뱃삯이라고도 하고, 저승에서 사용하는 용도의 돈으로 챙겨준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지전(紙錢)은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몇몇 문화권에서 사용되고 현세에서는 현금화할 수 없지만, 영혼의 세계에서는 묘지에서 바로 쓸 수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창호지에 엽전 모양을 그렸으나, 현대에는 금전, 은전, 일만관, 오만관 등 현실의 모양과 바뀌었고, 그려져 있는 초상에 따라 지장전, 옥황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디 돈뿐이겠는가? 권력자는 모든 금은보화와 심지어 사람까지 같이 묻는 순장(殉葬)도 있었다. 이것이 점차 지전 및 여러 물건의 형상을 본떠 종이로 접은 것을 묻거나 태워서, 죽어서도 그 물건을 가지고 넉넉히 살라는 의미로 줬다고 한다. 순장이 사라지면서 흙인형 같은 대체품이 생긴 것도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이접기의 유래 중 하나가 이것이라는 설도 있다.

남기는 것
난 민속신앙이나 불교관과는 다른 종교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틀니를 만들 때마다 나의 내세관과는 다른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아마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이 틀니를 예전처럼 관속에 넣어 가지고 가실지, 그냥 버려질지도 모르지만, 저승길 가시는데 잘못된 틀니로 제대로 식사하지 못하지 않도록 그저 잘 맞는 틀니를 해드려야지 하고 말이다. 망자의 가는 길을 걱정하는 것은 그 의미와 해석이 다를 뿐 어느 나라, 종교나 사실은 마찬가지의 마음일 것이다. 자식들이 이를 해드리려는 마음, 어르신들이 새 이를 해 넣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런저런 상념들이 쌓여 있다. 틀니의 특성상 어르신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역사, 그 속에 묻어 있는 수많은 의미 있는 것들이 얼마 후에 그저 없어질 생각을 하면 허무하기까지 하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지금은 이름이 아니라 ‘유산’이라는 말도 생겼다. 슬픈 얘긴 건지 의미심장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 태어나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대신 대부분 재산을 남아 있는 가족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남아 있는 가족들의 경제적 상황을 걱정하니 어쩌면 당연하다. 사실 나 또한 가족들에게 남겨줄 것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망보험을 많이 들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내가 남겨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정신, 감동의 이야기, 등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가진 그런 것들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대단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 잘 들어보면 그 속에 한 사람의 삶의 역사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이야기들도 있다. 나라에서 이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문서로 만들 필요성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에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대신 개인자서전을 써주는 일이 많고, 지역도서관에 그 지역 출신 노인들의 자서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틀니를 만들고 조정하지만, 결국 이 틀니를 사후에 가지고 가실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 분은 무엇을 남기고 가실까 문득 궁금해 진다.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일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그나마 자주 들을 수 있는 의사들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자서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묻혀버리는 한 개인의 역사가 안타깝기 때문이다. 그 개인적인 이야기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리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으면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물어보고 또 어르신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의사들이 많아질수록 개인의 이야기들은 구전(口傳)되고 회자(膾炙)되어 어딘가에 글로도 남겨지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오늘도 틀니 환자를 보면서 슬쩍 이야기를 건네본다. “어머님은 지금도 이리 고우신데 젊었을 때는 그냥 남자들 여럿 속태우셨겠어요.” 그러자 웃으시면서 옛날 생각을 끄집어내서 말씀하신다. “여럿 울렸지, 내가”. 그렇게 또 한 분의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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