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문화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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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문화차이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3.12.06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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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차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나 존재한다. 세대 간, 지역 간 문화차이가 없는 곳이 있을까…  인터넷으로 정보가 쏟아지는 요즘은 그런 ‘차이’라는 단어가 좀 무색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사실 문화차이라는 것은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정확히 느끼기는 어렵다.  내가 그 상황 속에 들어가서 당황하는 순간을 겪는 순간, 그 느낌은 또렷해지는 것이다.    

가끔 이민 1.5세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사실 나는 이민 1세가 분명한 사람이라, 오피스로 찾아오시는 한국분들의 정서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아니 어색이라는 말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젠 한국에서 지낸 날보다 미국생활이 훨 오랜지라, 미국문화와의 또렷한 구별을 하는지라 혼란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채,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해온 내 스태프들도 한국분들을 마주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전 오피스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하는 한 사건을 마주하기 전까지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77세 한국분 남자 환자를 보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시곤 한마디 하신다. “아니… 몸이 많이 불었어요.. 너무.. 좀.. 불은 것 같은데.. 운동 좀 해요. 운동하죠? 운동하셔야 돼요” … 갑자기 훅 들어오는 바람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얼어 있다가 겨우 대답을 했는데, “아니 별로 변한 게 없는데요. 절 날씬하게 보셨나 봐요.” 처음 본 분도 아니고 이전에도 몇 번씩 뵈었던 분인데, 갑자기 이렇게 확 들어오시는 통에 난 무척이나 낯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겨우 대답이라곤 했지만, 이 분이 한번 더 훅 들어오셔서 결정타를 날리신다. “아니 아니.. 많이 불었어요… “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 스태프들은 지금 무슨 말이 오고 가는지 알 길이 없어 어리둥절하며 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내가 스태프들에게 바로 상황을 설명해 주지만, 이 경우는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몰라 그냥 나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그래도 간단히 상황 설명은 해주어야 했다, “He said, I have gained lots of weight. He told me to lose weight.” 갑자기 스태프들의 눈동자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영어식 표현으로 eyes are rolling이라고 한다.) 아마도 나와 스태프들이 마음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은 같았을 것이다. 말은 못 하지만 하고픈 말은 이랬을 것이다, ‘너무 무례하시네요, 지금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어떤 마음으로 환자분을 치료할 것 같으세요? 지금 제 기분이 정말.. 그렇거든요.. 당장 나가주시죠….’  

우리들은 모두 멘붕 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그 말을 하신 환자분은 너무나 해맑고 innocent 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계신다. 왜 우리들이 어색한 표정을 하고 치료를 시작하지 않는지 의아해하시는 것 같았다. 아이고.. 뒷골이 당기기 시작한다. 소망하건대 아무런 악의 없이 순전히 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거라 굳게 믿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다음 보내드렸다. 그 치료가 어떻게 끝이 났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야만 했다. “ That's purely a matter of cultural differences. He didn’t mean it.” 

하루종일 뭔가 망치에 맞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내가 아들뻘로 보여도, 그래도 그 자리는 의사/환자의 관계가 분명한데 꼭 그 말을 하셨어야 했을까? 우리 문화에서 전혀 이해를 못 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 분 또한 미국생활 몇 십 년을 하신 분이 그런 말을 면전에다 대고 거리낌 없이 하시는 것은 이해해 드리고 그냥 아무런 일 없던 것처럼 넘기기가 정말 힘들었다. 

요즘 미국의 트렌드는 상대방의 나이는 물론 성별을 묻는 것도 쉽지가 않다. 법적 권리와 맞물려 그런 것들을 기술적으로 묻는 요령이 많이 개발되고 권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일을 기성세대의 뒷담화로 만들어 여러 가지 말을 할 수도 있었으나, 내가 스태프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이건 그냥 문화차이에서 온 해프닝으로 넘기기로 했다. 나를 너~무 아끼며 정을 나누고자 했던 한 어르신과의 대화였다고. 그게 또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화를 내기보단 다이어트나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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