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소록도에 새 삶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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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소록도에 새 삶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人’
  • 장동일 기자
  • 승인 2007.11.05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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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

 

이곳 생활을 즐겁고 자신의 천직 같다는 오동찬 의료부장

소록도는 바로 눈앞에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아직 우리의 손길은 멀기만 한 곳이다. 작은 사슴의 섬이라는 의미와 섬의 모양이 사슴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 소록도(小鹿島). 그래서 일까 이곳에 거주하고 근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사슴처럼 순하고 천진(天眞)하다. 소록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동찬 의료부장 또한 그런 이유와 공기가 좋다는 이유로 13년째 여기서 근무하고 있다.

소록도는 산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관광지는 아니지만, 걸어 다니면서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우체국, 도양읍 소록지소등 관공서와 가톨릭 교회, 개신교회, 원불교당 등 종교시설, 초등학교 분교 등 교육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2007년 9월 22일 고흥 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m의 연육교 소록대교가 임시 개통하여, 이제 더욱더 가까워진 섬이지만 아직 민간인 출입지역이 더 많은 섬이다.  

현재 소록도병원 환자 약600명이며 평균연령이 73세로 고령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수준이 열악하던 1950년대 이전에 환자의 80%가 발병하여 후유증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유로 인하여 의료진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나 수도권에서 6시간이상 소요되는 전남 고흥에 위치, 일반인의 한센병에 대한 편견, 공무원의 낮은 보수수준 등으로 인하여 지원자가 없어 의료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이곳에서 13년간 진료해온 오동찬 의료부장은 10개월간의 병원장 직무대리와 의료부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많이 힘들었는지 그동안의 툴툴 털어내는 듯한 말투로 새로운 병원장이 와서 행복하고 기쁘다고 말한다.

오 부장은 “지금 병원 분위기가 좋고 나는 이제 행복하다”고 말한다. 예전같이 진료하고 환자하고 즐길 수 있어서다. 91년간 소록도 병원에서 의료부장과 원장 직무대리 일을 같이한 역사가 없기에 그의 어께는 무거웠고 힘들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행정적인 일을 병행하다보니 진료에 등한시 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제 진료 충실하고 이렇게 주민과 환자들하고 생활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국립소록도병원 입구

 

아름다워 슬픈 소록도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에 의해 소록도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 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일본인 하나이 원장은 한센환자들의 자신의 몸같이 아끼며 치료해주었지만 나머지 일본인 원장들은 환자처우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살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당하였으며, 강제노동, 일본식 생활강요, 불임시술, 인체실험 등의 인권침해와 불편을 받았다.

소록도 내에는 일제시대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갱생원신사 등 일제시대 것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인 건물과 표지판 등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한센병은 나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한 제 3군 법정 전염병이다. 오 부장은 “전염되고 잠복기간 3년, 모르고 지나서 3년, 사람들에게 숨기고 다니며 3년이 지나야 자신이 한센병인 줄 안다”면서 “피부과에서 정기적인 진단과 약물처방으로 발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의 인식과 돈이 안 되는 예방치료이기 때문에 연구나 임상적으로 활동하는 원장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접촉자들은 나균에 대한 저항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걸리지 않는다. 전 세계 인구의 95%는 한센병에 자연 저항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균을 배출하는 환자의 경우도 리팜핀(리팜피신) 600 mg(4 알)을 1회만 복용하여도 체내에 있는 나균의 99.99% 가 전염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격리가 필요한 질환이 아니다. 성적인 접촉과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오 부장은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한센병에 대한 시각이 위험한 전염병으로 인식되어 있어 한센인들이 점점 우리와 멀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수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며, 그것이 복이다”고 말한다. 

 

검시실 또는 해부실이라고 불리는 건물로 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부실로 이용하였다.

 

소록도병원의 소중한 인재

오동찬 진료부장의 이미지는 이미 주민마을과 환자들에게 의사가 아닌 시골의 이장모습을 하고 있다. 오 부장과 함께 병원내 환자와 인사를 나누며, 그리고 마을주민을 만나보는 동안 그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써가며 주민과 대화하는 모습에서 그도 이젠 소록도에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95년도 소록도에서 공보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그에 대한 환자와 주민의 신뢰는 무한하다. 소록도 주민들이 주는 공로상을 의사선생으론 처음 받았다며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왜 13년 동안 이곳과 사랑에 빠졌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솔직히 저는 편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개원가에서 치열하고 경쟁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제가 하는 일은 일도 아니죠”라고 웃는 모습에 과연 다른 원장들고 이곳에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오 부장은 94년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구강외과 수련 후 소록도병원으로 공보의 근무를 하고 지금까지 오고 있다. 또한 그곳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를 만나 결혼을 했다.
이제 아이들이 성장해 학교도 가야하고 유치원도 가야해서 관사생활을 벗어나 인근도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아직도 ‘주말부부·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오 부장은 아이들이 성장할 때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치과의사상과 달라 ‘왜 아빠는...’이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 해서 곤욕스럽다고 한다.  얼마 전 중고차를 구입했지만 이전에는 “왜 우리는 차도 없고 집도 작고 멀리 다니냐”며 “심술부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버지가 죽으면 자신이 소록도에서 일해야겠다”고 말하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리는 오 부장이다.
“이제 큰아이들 설득하고 나니 작은아이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해?’하며 질문을 하더군요. 그래도 잘 따라주고 이해해주는 자식들이 고맙고 뒷바라지 잘하는 아내고 항상 감사하다”고 전한다.
한편 오 부장은 평생 동안 소록도에 살면서 봉사한 마리안, 마가레트, 마리아 수녀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들은 1959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스도왕의 수녀회’ 소속인 수녀들은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다고 한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다.

 

소록도 납골당으로 1년 한 번씩 추모식을 하고 있다.

 

짧지만 헌신을 다한 13년

오동찬 의료부장이 처음 소록도 공보의 시절 이곳의 환자들의 구강상태는 엉망이었다고 한다. 입안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악안면 장애가 심한 환자 대부분이었다. 이런 환자는 대부분 손과 손가락이 없는 관계로 구강관리를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오 부장은 체계적인 진료계획을 세워 꾸준히 구강관리와 감염관리 그리고 수술을 통해 95년도 30명이 넘는 구강환자가 지금은 없으며, 환자의 입원을 최소화 시켰고 현재는 구강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없다고 한다.
오 부장은 “당시에는 감염환자가 너무 많았다”고 회상하면서. 한센병으로 인한 치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혹시 개원할 생각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 부장은 “제가 힘들어 보이는 것 같지만 저는 개원가에 있는 동료들보다 훨씬 편하게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가끔은 동기 개원의들과 대화가 잘 안된다. 그래서 가끔 외톨이 느낌이 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단지 여기 사람들이 좋고 공기가 좋다는 이유로 이곳에 열정을 받치고 있는 오동찬 진료부장. ‘하루 세기 안 굶고 비 막을 집만 있으면 행복’한 것 아니겠냐며 이렇게 버티고 살수 있는것도 하나님의 감사함 때문이라고 전한다.
사슴 많은 소록도에서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백사슴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오동찬 부장은 마음이 선한 사람만 보이니깐 잘 찾아보라고 귀띔한다. 갑자기 마음이 뜨끔해진다. 겉으로만 한센병 환자를 위로하는 것은 아닌지. 오 부장의 말귀가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소록도병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리안, 마리아, 마가레트 수녀 공적비

 

항상 감사하는 사람에게

오동찬 부장은 조선치대 졸업 후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에서 구강외과 수련을 받았다. 그 시절 스승인 조병욱 과장과 이용찬 과장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그는 많은 걸 배우고 가르쳐준 스승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까지 소록도에 남아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스승에게 가장 죄송하다고 말한다. 또한 치대시절 스승이었던 김동기 교수에게도 또한 그의 동기인 제주도 문조 원장은 소록도 생활에 힘이 되어준 친구라고 감사의 말은 전한다. 

                                         
오동찬 의료부장, 그는 누구인가

조선치대 졸업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구강외과 수련
국립소록도병원 공중보건의
보건복지부 기술서기관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


 

 

한센병은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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