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53회-언어폭력
상태바
[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53회-언어폭력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3.10.05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요로결석으로 체외충격파 쇄석술을 했을 때다. 요로결석 자체만으로도 참기 힘든 옆구리 통증이 생기는데 충격파가 그 부위에 가해지면 그 통증은 몇 배로 늘어난다. 당연히 아플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에 시술 전에 환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약성 진통제를 주사해줄 정도다. 1차 시술 때 결석이 깨지지 않아서 2차 시술을 받게 되었고 충격파를 40분 정도 가한다는 얘기를 듣고 누웠다. 예상대로 참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생겼고 비록 한번 경험이 있었지만, 이 통증은 역시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지는 못했지만 내 느낌에는 족히 1시간은 지난 듯했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얼마나 더 해야 하나 1분이 10분 이상으로 느껴졌다. 결국, 예상했던 시간보다 2배는 더 걸렸고 제대로 길어진다는 설명 없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바로 병원에서의 일방적 침묵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어떤 경험보다도 가장 나에게는 폭력적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파서 너무 힘들었다고, 끝내는 시간을 좀 미리 잘 알려주지 그랬냐는 말에 “소리 질러서 부르시지 그랬어요”라는 답변마저도 너무 폭력적으로 들렸다.
침묵이 폭력이 될 수도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물리적인 신체 폭력만 폭력이 아니라 언어폭력에 이어 최근에는 사이버폭력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의료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환자의 폭력은 매년 그 강도가 강해지고 있고 병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언어적 폭력도 늘 끊이지 않고 뉴스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보이는 폭력이나 기록이 남는 사이버폭력과는 다르게 마치 폭력인지 모르게 지나쳐 가는 언어폭력이 쌓이게 됐을 때 그 파장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묻지마 폭행이 아닌 대부분의 신체 폭력은 언어폭력이 선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일명 ‘가스라이팅’도 언어폭력의 일종이다.

신체적인 폭력보다 훨씬 한 사람의 삶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언어폭력은 우리가 ‘Power and Control’이라고 부르는 즉,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 권력을 유지하고 통제하려는 수단으로 쓰인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언어폭력을 당하면 그것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욕설, 고함치기, 비하하기, 깎아내리기, 등은 그럴 수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정기적으로 언어폭력을 당하는 예는 더 미묘할 수도 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과연 그것이 폭력이 될 수 있을까?

미처 알지 못했던 폭력들
그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하고 들었던 말들이 곱씹을수록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욕설만 언어폭력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말들이 정서적인 폭력일까? 그 유형을 살펴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폭력을 행하는 가해자였는지, 아니면 피해자였는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욕설  욕쟁이 할머니의 시원시원한 욕, ‘조카 그레파스 18색’처럼 유희적 욕이 아니다. 대상의 자존감, 자아개념을 깎아내리는 욕설, 경멸, 모욕이 담긴 말은 말 그대로 언어폭력이다.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2. 비판  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거나 건설적인 피드백을 원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가혹하고 끈질긴 비판은 공개적이든 사적이든 고통스러울 수 있다. 
3. 잘난 척  보통 유머러스하게 포장되는 경우가 많지만, 상대를 깔아뭉개려는 의도의 비하적 발언, 비꼬는 말은 폭력적이다. 잘난 사람은 표현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준다.
4. 굴욕감  특히 공개적인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면 설사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그 정서적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5. 판단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고 본인의 입맛에 맞게 생각해 말하는 것, 멸시하거나, 비현실적인 판단으로 말하는 것이다.
6. 조롱  상대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친한 사이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특히 상대의 약점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것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7. 조작  말로 상대방을 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으로 특정한 것에 죄책감을 일부러 일으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8. 위협  상대를 놀라게 하고, 통제하려고 하고, 자기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의도로 협박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행해진다.
9. 침묵(무시)  말을 걸지 않거나, 무시하듯 쳐다보거나, 관심주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상대방이 비록 잘못했더라도 상대를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정서적인 학대가 될 수 있다.
10. 가스라이팅  교활하면서도 은밀한 감정적 학대로 자신의 판단과 현실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의료의 현장에서도 위에 열거된 10가지 정서적 폭력을 환자와 의사가 서로 행하고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돌보는 의사를 상대로 어떤 환자는 의사를 비판하고 때론 조롱하면서 위협을 가한다. 객관적으로 진료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환자의 컴플레인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를 제때 바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린 정서적인 언어폭력을 행하는 환자를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반복되는 언어폭력은 결국 물리적인 신체적 위협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의사가 환자에게 잘난 척하거나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일도 종종 생길 수 있다. 심지어 환자와 의사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사의 침묵은 환자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적어도 가해자는 되지 않기
의사가 환자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컴플레인을 넘어서는 환자의 반복되는 협박은 더 큰 물리적 신체적 폭력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반드시 미리 해결해야 한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장은하 부대표는 언어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상대방과의 경계를 설정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며, 그래도 지속될 경우에는 관계를 끝내고 필요하면 도움을 구할 것을 권한다. 결국, 언어폭력을 일삼는 환자와의 관계는 방치하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내 감염처럼 질병을 환자가 병원에서 얻어가게 되는 것처럼 억울한 것이 어디 있을까? 마찬가지로 적어도 환자의 언어폭력의 원인 제공을 병원에서 하면 안 된다. 말은 주고받는 것이다. 병원에서 언어폭력에 노출된 환자가 언제 폭력의 가해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원인을 제공하는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어에 신경 써야 한다. 신경 쓰기 귀찮다고 침묵은 하지 말자. 그 침묵이 또 다른 폭력으로 환자에게 비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