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55회-만족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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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55회-만족의 기준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3.12.06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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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나는 말이 없는 편이다. 진료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환자의 상태를 검사하고 치료계획을 세우고 그 내용을 설명할 때에는 진지하고 꼼꼼하게 말하지만, 그 이후에 치료가 진행될 때에는 다시 그 내용을 반복 설명하지 않고 그냥 진행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의사가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직원들을 통해 들을 때에는 나름 심각하게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환자가 불평했을까. 그리고 직원은 그 얘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자주 들었으면 나한테 직접 진지하게 얘기를 했을까. 

마음을 다잡고 환자에게 다시 자세하고 꼼꼼하게 시간을 투자해 이야기했다. 아마 다른 환자보다 5배는 더 열심히 설명했던 거 같다. 그런데 환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가격할인을 원했던 것일까.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단지 시간을 많이 투자해 이야기한다고 만족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면, 어차피 정해진 진료만 잘해주면 되지 않을까?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불친절함으로 되돌아가고 마는 진료의 일상이다. 그래도 나만 이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위안으로 삼는다.

실력 있는 친절한 의사
의사의 실력을 환자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의사들은 의사의 실력을 잘 알아본다. 그 실력을 믿고 환자를 의뢰했다가 안 좋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꽤 많다. 아마 환자가 느끼는 것은 실력이기보다는 친절함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실력이 좀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의사한테 최고의 의사라는 말을 환자가 하는 걸 보니 내가 잘못 판단했거나 아니면 그 친절함에 속은 것이리라.

친절하고 치료를 잘하는 의사라면 환자가 몰릴 것이 자명하다. 그 병원은 바쁘게 돌아갈 것이고 그 환자를 감당하기 위해서 의사와 스텝들은 점점 불친절해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낮은 의료 수가는 친절함에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된다고, 더 많은 환자를 보라고 보챈다. 실력 있고 친절한 의사는 결국 실력은 있지만 불친절한 의사로 전락하고 만다. 실력이 없고 불친절한 의사는 망할 것이 뻔하지만 실력이 없는데 친절한 의사는 환자가 그 실력을 잘 모를 수 있으므로 살아남을 수는 있다. 결국, 대한민국은 실력 있는 불친절한 의사와 실력 없는 친절한 의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친절하다고 실력이 없거나, 불친절하다고 반드시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잘 판단해야 하겠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실력 있지만 불친절한 의사가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난 것이 환자인 당신이라면 아주 극소수의 희귀한 의사를 만난 것이니 성공한 것이다.

모두에게 다른 기준
병원에서 CS 교육은 필수다. 좀 불친절하다 싶으면 CS 강사를 모셔와 강의한다. 아시다시피 CS는 Customer Satisfaction의 약어다. 여기서 Satis라는 단어는 “충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이에 추가하여 Facere라는 단어인 “알맞은”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환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형태가 없다. 개인이 생각하는 만족도의 수준이 다르고, 상황마다 충족시켜야 하는 범위 자체가 다르다. CS 교육은 대부분 고객이 원하는 수준을 측정하고, 정량적으로 파악해 객관적으로 판단해 서비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다. 사실 그런 노력에 쉼이 없다면 결국 만족하는 환자가 늘어날 것이다. Tease와 Wilton이라는 학자는 고객 만족에 대해서 “사전 기대와 사용 후 지각되는 실제 성과 간의 지각된 불일치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적 반응”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을 쉽게 하자면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에 기대했던 수준과 이용한 뒤 느낀 수준 간의 차이에 따라서 만족과 불만족이 나눠진다는 얘기다. 결국, 제공하는 정량적인 서비스의 양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가지고 있는 기대감의 양이 관건이다. 기대감이 높은 환자에게 아무리 10분 넘게 설명하느니, 기대감 낮은 환자에게 3분 설명하는 것이 더 높은 만족도를 끌어낼 수도 있는 법이다.

시장통에서 칼국수 장사를 하는 분의 성공스토리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쉴 틈 없이 칼국수 반죽을 하면서 계속 사리를 손님들에게 끓여준다. 원하는 분량만큼 계속 리필을 해주는 칼국수다. 그런데 아무리 리필을 하고 추가로 먹어도 지불하는 값은 1인분 가격이다. 사장님 왈 “제가 생각하는 1인분은 한 사람이 배부르게 먹었을 때의 양입니다.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배부를 때까지 먹으면 그게 1인분인 거죠. 그래서 추가로 드시겠다는 분에게는 무조건 더 사리를 추가해 드립니다.”

먹는 양이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인위적으로 1인분의 양을 정했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배부르게 먹는 양을 나름 기준으로 정했다는 것이 너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그릇의 양이 있다. 본인이 만족하는 1인분의 양이 정해진 것처럼, 어떤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만족의 그릇 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그냥 인위적인 서비스의 양을 정해놓고 그것만 해주고 만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물론 국수 한 그릇에 대한 기대와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비스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환자가 원하는 분량, 내용이 아니라면 만족시킬 수 없다.

불친절하지만 실력은 있는 대다수 의사로 지내도 나쁘지 않다. 적어도 실력이 없는데 친절한 사기꾼 같은 의사나, 실력도 없고 불친절한 도태되는 의사는 아니니까. 그래도 극소수의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환자가 원하는 만족의 그릇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그릇의 양과 채워야 하는 서비스의 질은 지속해서 고민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온라인 강의를 찾아 듣고 비싼 핸즈온 코스 등록을 하는 이유는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거나 유지하고 싶어서다. 그래야 좀 불친절해도 다수의 실력 있는 의사 집단에 동참할 수 있다. 이처럼 불친절하지만 실력 있는 의사로 남기 위한 노력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근처에 새로 문을 여는 초 저수가 치과의 의사가 혹시나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일까 봐 걱정되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일까 조금은 친절해지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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