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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로 바뀐 사람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③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  denfoline@denfo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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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31  14: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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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저는 어제 부모님을 모시고 이 병원에 왔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들의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차트로 바뀌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섯 시간이나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허약한 남자일 뿐이었습니다.
원무과 직원들은 참을성이 없었고 간호사들은 지쳤고 시설도 형편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위엄과 자존심을 박탈당한 채 그곳을 통과했습니다. 당신들이 기계적으로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 자꾸 되물어보는 귀찮은 환자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단지 당신들이 그렇게 취급했을 뿐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나를 키워주셨고, 나를 신랑에게 인도해주셨고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 받아주셨고, 내가 울 때 나를 달래주셨습니다. 그리고 곧 암으로 우리 곁을 떠나시겠지요.
이 편지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퍼붓는 비난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각각의 진료 차트에는 한 사람의 감정이 있고 살아온 내력이 있고 인생이 있습니다. 내일이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위치에 차트로 놓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줄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 주세요.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고, 남편이고, 아내이며,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또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미상,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중>
 
환자의 보호자가 병원을 상대로 쓴 글이다. 이 글이 우리에게 작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비슷한 일들이 우리에게 늘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기억력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암기만 잘해도 사실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일단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의사들에게 암기력은 중요하고 나도 나름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의 이름과 얼굴, 상태는 모두 조합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입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입안과 파노라마 사진을 보면 그 환자가 더 잘 기억이 나는 편이다. 알게 모르게 나도 그렇게 사람이 아닌 입안만 들여다보는 의사가 되고 있나 보다.
 
빨간 글씨로 규정된 환자
얼마 전 틀니를 새로 맞추러 온 할머님이 계셨다. 연세가 많으셨고 틀니가 오래되어서 바꾸고 싶다는 것이 주소였다. 나의 보철적 소견으로는 틀니가 오래되어 조금 마모되고 누렇게 변해서 그렇지 사용하시는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다시 만든 새 틀니에 새로 어렵게 적응하시는 것 보다는 잘 닦아서 쓰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틀니에 문제없다는 말에 자녀분들도 안심하는 눈치여서 내심 잘했다 싶었다. 그런데 얼마 후 할머님은 혼자 다시 오셨고 이제는 여기저기 틀니가 아프니 바꿔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안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래서 화제를 돌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할머님께 틀니를 바꾸고 싶으신 진짜 이유를 물었다.
“얼마 전 영감을 보냈어. 근데 그 영감이 남긴 틀니가 얼마나 망가지고 시커멓게 변했는지 내 맘이 아프더라고. 난 죽으면 좀 깨끗하고 예쁜 틀니 남겨야지. 애들이 혹시나 내 틀니를 보고 맘 아파하면 안 되잖아. 그러니 예쁘게 하나 만들어줘.”
 
환자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순한 나의 의학적 소견으로 치료의 필요성을 단정 지었다. 의학적으로 문제도 없고 사실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물어보지 않았다면 환자의 마음을 결국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장비를 이용한 진단에 익숙해져 있다. 다양한 진단 결과를 비주얼 있게 보여주는 최첨단 장비는 정확한 진단에 필수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신뢰할 만한 방법이라고 인정하면서부터 점차 문진, 촉진, 청진, 타진 등 우리의 오감을 이용하는 아날로그적 진단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환자를 단순화, 일반화시키고 Case별로 분류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과학적이라고 자부한다. 물론 비과학적인 내용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빨간 글씨로 그 환자에 대해 규정짓는 내용을 쓴다.
 
명의(名醫)는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신이 내려주신 타고난 재능이 있으면 신의(神醫)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환자의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는 심의(心醫)는 환자를 생각하는 진심(眞心)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차트에 기록된 빨간 글씨로 그 사람을 인식해버리는 우리가 아닌지…. 
 
   
 
사실과 가치의 조화
과학적 지식으로 충만하던 젊은 시절 나의 진료실은 자신감과 권위로 채워졌다. 환자는 때로는 혼내야 하고 잘 따르도록 평등한 관계를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과학적 판단에 거슬리는 환자는 가차없이 징계를 받았다. 내가 만들어준 틀니를 집에서 함부로 조정해서 오면 그냥 돌려보내는 과감함도 있었고 야매로 치료받고 온 사람을 대놓고 혼냈고, 어디서 듣고 나의 지식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알아듣지 못하는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주눅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치를 중요시하는 철학을 진료실에 적용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자구적 노력을 한 결과 나의 태도는 이제 완전 달라졌다. 틀니를 집에서 조정한 할아버지는 나에게 자꾸 오는 것이 미안해서 집에서 조정해서 써보려고 하다가 안돼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식에게 손 내밀기 여전히 미안해서 야매로 이를 해 넣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기를 많이 당해서 세상을 믿지 못하는 환자는 치료에 대한 인터넷 정보를 뒤적여서 뭐 좀 하는 척 하는 것이 어디서나 덜 사기 당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었다.
의학은 사실(의학에서의 과학)과 가치(의료윤리, 인문학 등)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둘이 조화되어 섞여야 한다. 바람직한 과학은 본질상 미적이고 윤리적이며, 복합적이고 언제나 모호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과학의 진리 주장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환자들 차트에 어떤 말들이 쓰여 있는가? 이름과 간단한 신상명세가 전부일 수 있다. 환자가 좋아하는 취미, 좋아하는 음식, 가족관계, 지난번에 입고 온 옷,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머리 스타일, 좋아하는 액세서리 등 그 사람에 대한 아무 것도 좋다. 빨간색으로 요주의 환자를 조심하려고만 하지 말자. 사람 냄새가 날 수 있는 차트는 여러분의 관심과 진심을 다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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